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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 대기자의 人]제주기지 갈등 9년… 이젠 주민들과 화합에 총력전

입력 | 2016-05-21 03:00:00

‘21세기 청해진’ 해군 제주기지전대장 강동길 대령




▲강동길 제주기지전대장(해군 대령)이 청사 옥상에서 군함과 크루즈선을 동시에 계류할 수 있는 제주민군복합항의 구조와 역할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곳을 ‘21세기 청해진’이라고 했다. 왼쪽에 정박 중인 군함은 제7기동전단 소속 이지스함인 서애 류성룡함이다.

심규선 대기자

일부러 보려고 한 것도 아닌데, 곧바로 눈으로 들어와 머리를 거쳐 쌩하고 가슴으로 전해졌다. 12일 오전, 해군 제주기지를 취재하러 갔다가 기지 앞의 서귀포 강정마을에서 본 플래카드 얘기다. 거기엔 ‘군인, 군대차량 강정마을 안길 출입 엄금’이라고 쓰여 있었다. 머리는 애써 이해하려 했지만, 가슴은 납득하지 못했다(이 문제는 뒤로 미루자. 그걸 취재하러 온 게 아니니…).

제주기지는 1993년에 합동참모회의가 처음으로 필요성을 공표한 이후, 우여곡절을 거쳐 23년 만인 2월 26일 준공식을 가졌다. 그 ‘우여곡절’ 속에는 주민들의 반대와 공사 방해, 법적 쟁송 등의 그늘이 들어있다. 기자가 본 플래카드는 그 후유증의 상징이다. 그래도 제주기지는 평화로워 보였다. 도내에서 조달한 120종류 18만 그루의 나무로 단장한 덕분일까. 기지 뒤편의 한라산 능선도 가는 펜으로 그린 듯, 이날은 날씨도 좋았다.

제주기지전대장인 강동길 해군 대령(47·해사 46기)에게 ‘제주기지전대(濟州基地戰隊)’의 역할부터 물어봤다. 제주기지전대는 연안방어 중심의 301방어전대를 해체하고 임무, 기능, 편제를 강화해 지난해 12월 1일에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 강 대령은 ‘창설’을 강조했다.

“제주기지를 방호하는 연대급 부대로 이해하면 된다. 해군작전사령부(부산) 예하 3함대(목포) 소속이다. 1함대(동해)와 2함대(평택)에도 같은 기능의 부대가 있는데 이름이 1기지전대, 2기지전대다. 우리 부대는 ‘제주’라는 지명을 부여받았다는 점에서 더 큰 자부심과 사명감을 느낀다.”

이 부대의 임무는 제주기지를 방호하는 것만이 아니다. 제주 해상 감시와 전투 근무 지원도 한다. 해상 감시는 당연하다 치고, 전투 근무 지원이란.

“제주기지는 해군의 주력함인 이지스 구축함과 잠수함, 유도탄 고속함 등이 둥지를 트는 모항이 됐다. 함정과 승조원들이 완벽한 상태에서 작전에 임할 수 있도록 하고, 항구로 돌아와서는 편안히 쉴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 부대의 주요한 임무 중 하나다.”

강 대령의 입에서 몇 차례나 “승조원들이 리플래시(재충전)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선뜻 이해를 못했다. 다른 부대원을 고객으로 여기고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부대의 임무라니…. 제주기지전대는 실제로 승조원들의 운동화부터 이불까지 빨아준다.

제주기지 합동청사의 중앙 로비 벽에 붙어있는 부대 마크들. 왼쪽이 제93잠수함전대, 가운데 세 개가 제7기동전단과 예하 71, 72기동전대, 오른쪽이 제주기지전대 마크다. 거북선이 빠지지 않는다. 제주=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투철한 서비스정신으로 무장한 제주기지전대의 행복한 고객은 누구인가. 제7기동전단(전단장 남동우 준장·해사 41기)과 제93잠수함전대(전대장 최기영 대령·해사 45기)다. 두 부대는 지난해 12월, 함정과 잠수함을 이끌고 각각 부산과 진해를 떠나 제주기지로 이사했다. 모항(母港)을 바꾼 것이다. 해상에서 싸우는 제7기동전단, 수중에서 싸우는 제93잠수함전대, 그들의 모항을 방호하고 지원하는 육상의 제주기지전대는 임무와 기능이 다른 셈. 그래서 제주기지는 ‘한 지붕 세 가족’이라는 말을 듣는다.

대한민국 해군은 왜 갈등을 무릅쓰면서까지 제주기지를 원했던 걸까. 티타임에서 만난 남 제독은 제주기지의 전략적 가치를 이렇게 설명한다.

“제주기지는 동서남해를 동시에 기동감시할 수 있는 길목(Choke Point)에 자리 잡고 있는데다 유사시에는 동해와 서해로 신속하게 전개할 수 있다. 전방함대와 빨리 합류해 북한의 도발에도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기지를 나오면 바로 넓은 바다여서 적의 항만 봉쇄에도 선제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경제안보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우리나라 교역의 99.7%는 바닷길을 이용하고 그중 대부분이 제주해역을 통과하기 때문. 이어도의 해양과학기지, 제주남방 배타적 경제수역 내의 천연가스와 원유 등 해양자원을 보호하는 일도 제주기지의 몫이다.

그런 역할의 중심에 우리나라에 3척밖에 없는 이지스 구축함(세종대왕함, 율곡 이이함, 서애 류성룡함)이 있다. 마침 제주기지에는 서애 류성룡함이 정박 중이었다. 함장인 김성환 대령(해사 46기)의 안내로 함내 곳곳을 둘러보고 사관실에서 브리핑까지 받는 호사를 누렸다. 군함 내부라곤 미국 드라마 NCIS(미 해군 범죄수사국)에서 본 게 전부인 기자는 기껏 “매우 복잡한 무기체계와 전자장비를 승조원들이 완벽하게 운용하고 있느냐”는 질문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자 “류성룡함은 물론이고, 체계가 비슷한 다른 함정에서 반복된 훈련과 경험을 쌓은 장교와 수병들이 주기적으로 배치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함정은 2월 7일 북한이 발사한 장거리미사일을 탐지하는 데도 공을 세웠다. 그러나 기자는 그 어떤 설명보다, 스스럼없이 매스컴을 승선시키고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는 승조원 300여 명의 모습에서 해군의 자신감을 읽었다.

이쯤에서 제주기지의 또 다른 ‘중요한 이웃’을 소개해야 할 것 같다. 민간용 크루즈선 부두를 말한다. 당초 제주기지는 군용으로만 지으려 했으나 제주도민과 정치권의 요구를 수용해 15만 t급 대형 크루즈선 2척도 동시에 계류할 수 있도록 설계를 변경했다(2008년 9월, 국가정책조정회의). 그래서 얻은 이름이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라는 긴 이름이다.

강 대령은 제주민군복합항을 ‘21세기 청해진’이라고 소개한다. 네이밍치고는 수작(秀作)이다.

“통일신라시대의 해상왕 장보고는 청해진(지금의 완도)에 군사와 무역의 복합거점을 만들어 해적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고 당-신라-일본을 잇는 해상무역로도 장악해 국부를 창출했다. 제주민군복합항과 기능이 같다. 그러니 제주기지는 21세기 청해진이다.” 크루즈선 부두가 없었다면 ‘민군복합’이라는 이름도 없었을 것이다.

21세기 청해진은 이름에 걸맞은 환경을 갖추고 있는가. 강 대령은 전대장을 맡기 전 2년간은 민군복합항 건설사업단의 계획통제실장으로도 일했다. 제주기지의 척척박사라는 뜻이다.

“예전에 부산이나 진해를 모항으로 삼았던 함장들이 제주기지를 매우 좋아한다. 여기에는 좁은 수로가 없어 입출항이 빠르고 안전하기 때문이다. 각종 지원체제나 복지시설, 자연 환경 등도 최상급이어서 승조원들의 만족도도 매우 높은 편이다.”

맞다. 그러나 주민과의 갈등도 현재진행형이다. 600가구를 지으려던 관사는 주민들의 반대로 380가구로 줄였지만 결국 72가구만 지을 수 있었다. 현재는 승용차로 20분 이내에 있는 9개 지역에서 202가구를 사들여 관사로 쓰고 있다.

요즘 가장 큰 이슈는 해군이 구상권 행사를 위해 제주기지 공사를 방해한 5개 단체와 개인 116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해군은 소송 대상 중 강정마을 주민은 30여 명이고 나머지는 외지인으로 보고 있다). 배상 요구액은 34억5000만 원. 야권은 화합 차원에서 소송을 취하하라고 압박하지만, 해군은 정당한 조치임을 강조하고 있다.

소송은 소송이고 제주기지전대와 부대원들은 주민과의 화합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강 대령은 매주 목요일을 ‘영외 중식의 날’로 정하고 부대원을 강정마을로 내보내 점심을 사먹도록 하고 있다. 이는 여러 시도 중 하나일 뿐이다. 주민과의 정기간담회, 의료지원, 홀몸노인 보살피기, 인근 초중고교와의 자매결연, 지역 주민에 복지시설 운영권 우선 배정, 식자재 전량 현지 구입, 새해 첫날과 어린이날 부대 개방 등등…. 마치 대민활동의 백과사전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제주기지와 부대원들이 강정마을과 제주도에 가져다주는 경제적 효과도 숫자로 나와 있지만 자세한 언급은 피하겠다. 주민과의 화합은 전투력향상을 위한 수단인데, 수단이 목적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래도 강 대령은 말한다.

“9년간의 갈등이 하루아침에 풀어질 수 있겠는가. 한걸음씩 나아갈 수밖에 없다. 기지 방호태세 완비, 완벽한 전투 근무 지원 외에 지역주민과의 화합도 초대 전대장인 내게 주어진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한다. 꼭 완수하고 싶다.”



■ 취재를 마치며

바다에서 싸워야할 수병들 육지서 힘 빼게 해선 안돼



인터뷰 과정에서 기자의 의견을 피력하고 싶은 대목이 몇 군데 있었다. 군의 의견과 섞이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별도로 정리한다.

첫째, 기지 앞에서 초병들을 비아냥대며 자극하는 식의 반대 시위는 거두는 게 옳다. 어쩌다 제주기지에 배속됐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수모를 받아야 한다면, 강정마을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군부대와 공존하게 된 것부터 수용하는 게 순리다. 그리고 앞으로 시위는 결정권이 없는 기지 앞이 아니라 서울의 국방부나 국회 앞에서 할 것을 권한다. 둘째, 정치권은 성급하게 구상권을 포기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소송을 취하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는가. 권리는 반대진영의 전유물이 아니다. 셋째, 노무현 대통령이 기지건설을 결정했으므로 좌파나 진보진영도 제주기지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반대한다. 그런 논리라면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이 결정했으면 반대해도 괜찮다는 것인가. 필요해서 만든 기지이므로 수용해야 한다는 논리가 맞다.

조국은 병사를 사지(死地)로 내보내며 죽음의 공포보다 강한 진통제에 의지한다. 조국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국민이 주는 무한한 믿음이 진통제 아니겠는가. 자랑스러운 조국의 명령을, 믿었던 국민이 부인하는 바람에, 중간에 낀 군인이 고통 받고 있는 게 제주기지 갈등의 본질이다. 옳고 그름은 따져야 하나, 갈등의 피해를 군인과 군대가 질 이유가 없다. 국가와 국민은 바다에서 싸워야 할 수병들이 더 이상 육지에서 힘을 빼도록 해서는 안 된다.













▼방파제 수면서 19.4m 높이… 매미 수준 태풍에도 안전▼
 
제주민군복합항

 

제주민군복합항의 부두는 크게 세 구역이다. 대형함 부두(최대 7척), 중소형함 부두(잠수함 포함), 크루즈선 부두이다. 계류부두의 길이는 2400m, 항구 외곽을 감싸듯 만든 방파제의 연장은 2500m다. 함정 20여 척과 15만 t급 이상 크루즈선 2척을 동시에 계류할 수 있다. 물 깊이는 11∼25m여서 대한민국 해군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함정을 수용할 수 있고, 22만 t 이상의 크루즈선도 문제가 없다.

항만 터는 49만 m²(14만9000평)로 58%는 사들였고, 42%는 매립했다. 육상 터는 8만2400m²(2만5000평). 2006년부터 2015년까지의 공사비는 1조231억 원이고, 내년 7월에 완공되는 크루즈터미널 공사비로 534억 원이 더 들어간다.

군항의 기능은 거의 자리를 잡았다. 궁극적으로는 제주기지전대 소속 600여 명, 제7기동전단과 제93잠수함전대 소속 2500여 명 등 3100여 명(상주 1500여 명)의 군인과 그 가족 등 7000여 명이 생활하게 된다.

크루즈 부문은 제주도가 운영한다. 내년 7월 터미널 완공 이후 12월까지 이미 120회의 크루즈선 입항이 예약돼 있다. 크루즈선 계류장은 방파제의 안쪽을 이용하는 창의적 구조인데 179개의 기둥으로 만든 희고 긴 회랑이 인상적이다. 척 보면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이 떠오른다. 크루즈 선착장과 이동로는 군항 터와는 완전히 격리되어 있다.

방파제의 높이는 수면에서 19.4m로 단일 방파제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크다(가장 긴 방파제는 포항영일만 북방파제로 4100m). 2003년 9월 한반도에 큰 피해를 준 매미급 태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했다. 또 하나. 방파제의 중간과 맨 위에 번듯한 길을 만들어 놨는데 주변의 올레길과 연결해 일반인에게도 개방할 예정. 방파제 위에서 바라보는 ‘복합미항’은 꽤 아름답다. 하와이와 시드니를 지향한다고 하는데, 꿈까지 막을 필요는 없을 듯하다.


※취재에 협조해 주신 제주기지전대, 제7기 동전단, 서애 류성룡함, 해군본부 정훈공보실 관계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