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용 접착제의 진화
첨단 의료용 접착제가 봉합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쓰기 쉽고 하루 뒤부터는 샤워도 할 수 있다. 최근에는 피부 상처뿐 아니라 내부 조직이나 뼈까지 붙일 수 있는 접착제가 개발되는 등 의료용 접착제 기술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 혈액 흐르는 심장에서도 강한 접착력 유지
미국 연구진은 빛을 만나면 고체로 바뀌는 접착제를 개발해 심장 벽의 손상 부위를 봉합하는 데 성공했다. 카프 연구소 제공
페레이라 박사는 제프리 카프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팀과 공동으로 빛을 받으면 고체로 변하는 액체 접착제(HLAA)를 개발해 2014년 ‘사이언스 중개의학’에 발표했다. 이 연구에는 카프 교수팀의 한국인 과학자인 이유한 박사후연구원도 참여했다.
연구진이 수술한 심장 조직에 접착제를 바르고 빛을 쪼이자 탄성이 있는 고체로 바뀌면서 찢어진 부위가 봉합됐다. 항상 혈액이 흐르고 강한 혈압이 작용하는 환경에서도 접착력은 유지됐다. 무엇보다도 상처가 아문 뒤에는 접착제가 몸속에서 생분해된다. 이 접착제는 쥐나 돼지 심장 수술에서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페레이라 박사가 연구책임자로 있는 프랑스 바이오벤처 ‘게코 바이오메디컬’은 이르면 올해 의료용 접착제를 출시할 예정이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한세광 포스텍 신소재공학과 교수팀은 윤석현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팀과 공동으로 빛을 이용해 피부 조직을 접합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빛에 반응하는 물질을 상처에 바르고 빛을 쪼였더니 피부의 콜라겐이 서로 결합해 상처가 봉합됐다. 빛을 전달하는 도파관이 생분해되기 때문에 피부 깊숙한 곳에도 적용할 수 있다. 연구진은 돼지 피부에 적용한 실험에 성공한 뒤 ‘어드밴스트 펑크셔널 머티리얼스’ 2월 1일자에 이 내용을 발표했다.
○ 홍합에서 뼈 접착제 개발
상처 부위에 홍합 접착 단백질로 개발한 접착제를 바른 뒤 2주일간 회복 과정을 관찰한 결과(오른쪽) 봉합사나 기존 접착제를 사용했을 때보다 회복 속도가 빠르고 흉터가 작았다. 포스텍 제공
뼈가 완전히 부러지면 핀으로 고정하지만 잘게 부서진 경우에는 소나 돼지의 뼛가루로 만든 이식재를 넣어 뼈 재생을 돕는다. 문제는 이식재가 다른 곳으로 흩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임플란트 수술에서 치아의 지지 뼈를 보강하기 위해 이식재를 쓰기도 하는데 입 속 수분이 장애물로 작용한다.
연구팀은 전상호 고려대 안암병원 치과 교수팀과 공동으로 홍합 접착 단백질로 만든 접착제를 이용해 이식재를 고정하는 방식을 개발했다. 쥐의 두개골에 구멍을 내고 이 방식을 적용하자 뼈 성장인자가 이식재에 잘 달라붙으면서 뼈 재생 속도가 1.5배 빨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결과는 2014년 ‘재료화학저널B’에 발표됐다.
차 교수팀은 홍합 접착 단백질을 바르고 청색 빛을 쪼이는 방식으로 피부 조직을 붙이는 데도 성공했다. 생쥐 피부에 난 상처에 적용한 결과 7일 뒤 상처가 봉합됐으며 접착 단백질은 완전히 분해됐다. 2주 뒤에는 흉터도 거의 남지 않았다. 연구 결과는 지난해 ‘바이오머티리얼스’에 실렸다.
차 교수는 “인공 합성한 화학물질인 여타 의료용 접착제와 달리 홍합에서 자연 추출한 단백질로 만든 접착제라는 점에서 인체에 안전하다”며 “이르면 올해 임상시험에 들어가 내년 후반 이후 제품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