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경 여성동아 편집장
공항패션이 하나의 산업이 된 이유는 공항이란 공간의 특별함 때문이다. 현실의 역할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을 찾아보는 길이 여행이고, 공항은 그 여정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스타들도 여행할 때는 협찬 의상이 아닌 자기 옷을 입는다는 전제와 그들의 사적인 모습에 열광하는 대중과 미디어가 공항패션을 만든다. 공항패션은 패셔니스타를 탄생시킨 동시에, 옷 못 입는 연예인의 명단도 만들었다. ‘입으면 유행’이라는 A급 연예인이 공항패션 노출로 업체에서 받는 돈은 2000만 원 정도인데, 자신의 이미지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SNS로 확산되는 이미지가 광고모델의 등급을 정하니, 연예인은 방송 의상보다 공항 문을 들어서는 몇 초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최근 가장 성공적인 공항패션은 박근혜 대통령의 히잡이다. 박 대통령은 1980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을 방문하는 첫 번째 비(非)이슬람권 여성 지도자로, 정교일치 국가의 전통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히잡 공항패션을 선택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브랜드의 광고이자, 국정 수행 지지도 최저치를 경신한 대통령의 간접광고였다. 그 가치를 돈으로 바꿀 수 있을까. 전 세계로부터 경제제재를 받은 나라, 불가사의할 정도로 낮은 여성의 지위, 종교와 정치가 하나인 낯선 체제조차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공항에 내리는 순간 흰색 천 한 장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빨간색은 파란색 한나라당에서 180도 달라지겠다는 자기반성, ‘레드 콤플렉스’ 극복, ‘붉은 악마’로 상징된 젊은 세대에 대한 공감을 뜻한다는 게 새누리당의 설명이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옷이 연설 이상으로 강력한 호소이자 간접광고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활용해 온 정치인이다. 공항패션으로 다른 나라에 대한 공감과 존중을 알린 대통령이 국내에선 지시와 명령만 전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조사에 따르면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대통령이 옷을 잘 입는다’고 대답한다고 한다. 대통령이 일을 잘하면 뭘 입어도 좋게 보인다는 거다. ‘유능하다’와 ‘아름답다’는 반대말이 아니다. 우리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참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민경 여성동아 편집장 holde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