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1월 9일 서울 서대문의 한 식당에서 열린 안확(安廓·1886∼1946)의 ‘조선문명사’ 축하회 기사 일부다. 문단과 각계 유지들이 발기인이 되어 안확을 초청하고 환담한 20명 규모의 축하회, 남아 있는 기록으론 최초의 출판기념회다.
모든 출판기념회가 화기애애했던 건 아니다. 홍효민 소설 ‘인조반정’(1936년) 출판기념회는 광복 후 ‘효민의 밤’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소공동 플라워 다방에서 열렸다. 시인 정지용이 술 취해 늦게 와서 시비를 걸었다. “효민의 밤은 또 뭐고 ‘인조반정’은 다 뭐냐.” 평론가 유동준이 정지용을 밖으로 끌어냈다. 우익 조선청년문학가협회 문인들이 행사를 주관했고 정지용은 좌익 조선문학가동맹에 속했다는 점이 시비의 단서다.
“1965년 4월 고혈압으로 쓰러진 후 나는 어떻게 하면 살아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죽음 속에서 확인할까 해서 한 편 한 편 썼습니다. 짧은 인생을 영혼에 결부시키는 본질적인 표현이 바로 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무런 기교도 미학도 없고 다만 내 나름의 진선(眞善)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나는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잘 어울려 살까 하여 시를 씁니다.”
지난달 19일 작고한 작가 신봉승은 한양대 영화과 시나리오 작법 강의 내용을 1966년 ‘시나리오의 기법’으로 펴냈다. 그는 ‘워낙 책 내기 어려웠던 시절이라 친구들 강권에 밀려 무교동 호수그릴에서 출판기념회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당시 영화평론가 이영일이 사회를 보고 작가 김동리, 배우 김승호가 축사를 했다. 1970년대까지도 많은 문예계 행사들이 호수그릴에서 열렸다.
요즘은 ‘워낙 책 내기 쉬운 시절이라’ 출판기념회도 흔한가 보다. 총선과 지방선거가 있는 해에는 더 흔하다. 주최 측도 참석자도 부담스럽다. 지인들이 준비하여 축사, 답사, 식사가 이어지며 말 나누고 음식 나누는 20명 남짓 규모 축하 모임이 될 수는 없을까. 한 세기 전 안확의 저작 축하회가 그리운 까닭이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