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행복 생활체육 <1>세살 운동 여든까지
“이쪽 우리 마당에 쓰레기가 이렇게 많네. 저쪽 쓰레기장으로 보내자.”
서울 광진구에 있는 구의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원생들이 21일 유치원 신체활동실에서 ‘스카프 던지기’ 놀이를 하고 있다. 상대 팀을 향해 힘껏 스카프를 던지는 아이들의 표정이 즐거워 보인다. 수업을 맡은 생활체육지도자는 “전용 신체활동실 덕분에 아이들이 마음껏 뛸 수 있다. 이 정도의 시설을 갖춘 곳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조 씨가 아이들을 잠깐 멈춰 세우더니 스카프를 던진다. 펼친 채로 던진 스카프는 멀리 가지 못했다. 다음에는 스카프를 공처럼 뭉쳐 던졌다. 훨씬 빠르게, 멀리 날아간다. 아이들의 입에서 “우와” 하는 탄성이 터졌다. 곧바로 14명의 아이들이 너도나도 스카프를 뭉쳐 던지기 시작했다.
“한 번에 하나씩만 던져야 돼. 여러 개 던지면 반칙이야.”
웃는 얼굴로 지켜보던 조 씨가 ‘규칙’을 알려 준다. 예전에도 했던 활동이지만 아이들은 금세 잊어버려 수업을 할 때마다 반복해야 한다. 하지만 던지는 방법은 수업을 할수록 나아진다. 몸이 기억을 하기 때문이다.
서울 광진구 구의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서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전에 신나는 체육시간이 펼쳐진다. 목요일에는 만 5세반 아이들이 두 그룹으로 나뉘어 40분씩 체육활동을 한다. 반을 나누는 이유는 한 번에 참여하는 인원을 줄여 친밀한 지도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전문 지도자와 기존의 유치원 교사 등 2명이 함께 아이들을 돌보니 충분히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
‘폴짝폴짝 아이 마당’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전문 인력 배치다. 해당 지역 시군구 생활체육회 소속의 지도자가 아이들을 가르친다. 조 씨는 용인대 체육학과를 졸업하고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까지 갖고 있지만 아이들을 지도하기 위해 별도의 연수 과정을 마쳤다. 다양한 용품도 프로그램 지원 항목의 하나다. 미니 낙하산, 훌라후프, 탱탱볼, 오색로프, 스카프, 줄넘기, 플라스틱 라켓, 미니 링, 대형 탄성볼, 미니 야구배트 세트, 개인용 줄넘기, 단체용 줄넘기 등 16가지 도구를 담은 ‘유아 체육용품 꾸러미’가 보급됐다.
각 시설에 배치된 전문 지도자들은 자신만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커리큘럼을 짠다. 21일 조 씨가 진행한 수업은 ‘스트레칭→꼬리잡기→스카프 던지기→정리운동’ 순으로 진행됐다. 단순해 보여도 여러 가지를 고려한 내용이다. 스트레칭은 본격적인 활동을 앞두고 몸을 푸는 목적 외에 키를 크게 하는 동작 위주로 구성했다. 자녀들이 쑥쑥 자라기를 바라는 학부모들의 요구를 적극 반영한 것이다. 다른 아이가 허리에 두른 스카프를 낚아채는 ‘꼬리잡기’는 순발력과 민첩성을 기르는 데 효과적이다. 자연스럽게 경쟁심을 유발하기 때문에 뛰는 양이 많아져 심폐 기능 발달에 큰 도움이 된다. 짧은 시간에 많은 칼로리를 소모하기 때문에 비만 걱정도 줄일 수 있다. 조 씨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고 기다리는 활동이라 많이 이용한다”고 전했다. ‘스카프 던지기’를 통해서는 어깨 근육을 활용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다. 팀을 나눠 하는 활동이라 협동심을 기르는 데도 좋다. 처음에는 손목과 팔로만 스카프를 던지던 아이들이 선생님과 다른 아이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어깨를 이용해 던지게 된다. 그게 멀리 던지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친 것이다.
40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아이들이 이 시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았다. 이날은 스카프를 활용해 두 가지 운동만 했지만 도구에 따라 무궁무진한 놀이(활동)가 가능하다. 조 씨는 스트레칭이나 정리운동 단계에서는 ‘V자 버티기’도 자주 시킨다. 앉아서 두 다리와 팔을 최대한 붙여 몸을 V자로 만드는 것으로 간단하지만 근지구력을 강화하는 데 효과적이다. 조 씨는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을 움직이게 하려면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 운동이 아니라 놀이로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 스카프 던지기를 할 때 쓰레기를 얘기한 것처럼 ‘스토리텔링’을 개발해야 아이들의 집중도가 높아진다. 생각했던 것보다 아이들이 잘 따라 주고 있어 가르치는 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30분 이상의 지속적인 운동은 엔도르핀을 나오게 하고, 성장 호르몬 분비도 촉진한다. 면역체인 백혈구 수도 증가시킨다. 유아 때부터 체육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면 운동신경은 물론 아이들의 사회성도 조기에 발달시킬 수 있다.
수업을 마친 아이들의 얼굴에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유치원 한쪽에 자리 잡은 신체 활동실을 빠져나가는 아이들이 현장을 촬영하던 사진기자에게 “안녕히 계세요”라며 밝게 인사를 한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손을 흔들고 ‘하이 파이브’를 하는 아이도 있다. 기분이 좋아졌다는 증거다.
원생들이 생활체육지도자의 지도에 따라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스트레칭은 키를 크게 하는 동작 위주로 구성됐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하지만 아쉽게도 이 유치원은 올해 한 해만 지원을 받는다. 올해 지원 대상에 포함된 405곳 모두 마찬가지다. 전국에 있는 국공립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약 7500개인데 정해진 예산(7억5200만 원)과 인력 여건상 특정 유치원을 계속해서 지원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체육회는 유치원과 어린이집 교사를 대상으로 유아체육 지도방법을 교육하는 사업도 함께 마련하고 있다. 올해 유아 체육활동 지원 사업 대상인 시설의 교사들 10명에게 전문 지도자가 유아체육 이론과 실기교육을 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올해에만 4050명(405곳×10명)의 유치원·어린이집 교사가 유아체육 지도와 관련해 어느 정도 전문적인 지식을 갖출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국가체육지도자 자격제도를 전면 개편했다. 경기지도자와 생활체육지도자로 양분돼 있던 것을 전문·생활·건강운동·장애인·유소년·노인 스포츠지도사 등 6개로 세분한 것이다. 현재 유아 체육활동 지원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340곳의 유치원·어린이집에는 기존 시군구 생활체육회 소속의 생활체육지도자가 배치됐다. 하지만 하반기에 새로 지원 대상에 포함되는 65곳의 유치원·어린이집에는 신설된 유소년스포츠지도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외부 인력을 배치할 예정이다. 전문성을 좀 더 강화하는 동시에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기 위해서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