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운·문화부
24일 문화재청 관계자는 경주 황룡사지 신라유적 훼손 사건에 대한 경주시의 입장을 전해 듣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경주시가 ‘황룡사 역사문화관’ 경계석축 공사를 급하게 진행하면서 통일신라 적심석(積心石·초석과 함께 건물 밑바닥에 까는 돌)을 훼손한 사실을 전한 본보의 단독 보도 직후, 시 관계자는 한 지역 언론에 “14일 불법 공사 현장을 적발한 뒤 문화재청 신라왕경사업추진단에 알렸다”고 밝혔다. 마치 시는 공사와 전혀 무관하며 전적으로 시공업체의 잘못인 것처럼 해명했다.
하지만 시의 해명은 진실과 다르다. 본보가 경주시와 문화재청 관계자들을 접촉한 결과, 경계석축 공사는 이달 11일부터 시작됐으며, 사흘 뒤인 14일 인근 남문지 담장을 발굴 조사하던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의 제보로 유적 훼손 사실이 드러났다. 이 연구원은 문화재위원회의 허가도 없이 굴착기가 공사에 투입된 점을 수상히 여겨 현장을 직접 둘러본 뒤 신라왕경사업추진단에 이런 사실을 알렸다. 이는 기자가 역사문화관 공사를 담당한 경주시 공무원과의 인터뷰에서도 확인한 내용이다.
시는 불리한 상황을 모면하려는 거짓 해명을 중단하고 반성부터 하는 게 옳다. 시공업체의 공사 개시일자를 사전에 보고받지 못했다는 시의 해명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발주처로서 설계변경을 추진하고 철저하게 감독해야 할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본보 취재 결과, 시가 올 3월 뒤늦게 설계변경을 추진했음에도 6월 개관을 밀어붙인 사실도 드러났다.
황룡사지 내 불법공사는 단순한 지역 차원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국가 문화재를 훼손했다는 점에서 상황은 엄중하다. 현장조사를 다녀온 한 문화재위원은 “너무 충격적이어서 눈을 그대로 감고 돌아오고 싶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경주시는 “후손들에게 죄 짓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재발 방지에 나서야 할 것이다.
김상운 문화부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