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이후! 이제는 경제다]中, 공급과잉 업종 거침없는 수술
《 정부의 기업 구조조정 작업은 4월 총선으로 인해 지난 몇 달간 개점휴업 상태였다. 한국이 허송세월하는 사이 경쟁국인 중국과 일본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올해 초 철강·석탄산업 구조조정에 나선 중국은 180만 명의 실직자가 발생하는 것도 감내하겠다는 각오다. 일본 역시 인수합병(M&A)을 통해 구조개편 중이다. 이대로 간다면 구조조정의 가속페달을 밟는 중국, 일본과 제자리걸음을 하는 한국의 산업 경쟁력 면에서 차이가 크게 벌어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
○ 살벌한 대륙의 구조조정
중국 3대 국영 철강업체 가운데 하나인 우한강톄(武漢鋼鐵)도 최근 대규모로 인원을 감축 중이다. 마궈창(馬國强) 우한강톄 회장은 “회사 전체 인원의 절반인 4만∼5만 명이 더는 철강업에 종사하기 힘들 것”이라며 “합병, 재조직, 통합조정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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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산업 구조조정은 거침이 없다. 철강 석탄 시멘트 등 공급 과잉 업종에 과감하게 메스를 들이댄다. 이런 과정에서 철강에서 50만 명, 석탄에서 130만 명 등 총 180만 명의 실직자가 양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에서는 업체가 지방도시 경제를 책임지는 경우가 많아 회사가 문을 닫으면 사실상 도시 하나가 사라지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이런 고통을 감내하겠다는 게 중국 정부의 방침이다.
물론 구조조정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도 있다. 중국 노동부는 18일 관계 부처와 함께 철강·석탄업계에서 발생할 대규모 실업에 대비해 ‘일자리 재조정 대책’을 내놨다. 퇴출자의 창업 지원과 생계 보장용 예산으로 1000억 위안(약 17조5000억 원)을 마련해 조기 퇴직자에게 별도 수당을, 창업 지원자에게는 교육과 지원금을 각각 지급하기로 했다. 또 100명 이상을 정리 해고한 기업에는 채용박람회를 열도록 했다.
○ 중국판 레이거노믹스로 승부한다
중국 정부의 공격적인 구조조정은 한계 기업을 퇴출시키지 않으면 공급 과잉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특징적인 것은 기업의 생산성과 공급 효율성을 높이는 이른바 ‘공급 측 개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열린 중국 최대의 정치 행사인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올해의 경제정책 화두로 거론됐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중국 정부의 정책이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채택한 ‘공급 중시 경제학(supply-side economics)’과 닮았다며 ‘중국판 레이거노믹스’로도 부른다.
레이거노믹스는 감세 등을 통해 부담이 줄어든 노동자의 근로 의욕을 높여주는 한편 규제완화로 기업투자를 유도해 총 공급을 늘리는 방식이다. 하지만 중국판 레이거노믹스는 강력한 산업 구조조정 정책과 병행해서 추진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박래정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정부가 설계하고 경우에 따라 필요한 자원도 지원하는 중국의 구조개혁은 수요 확대를 목표로 하는 단기적인 경기대책 수단으로도 활용된다”며 “중국판 레이거노믹스는 활용 범위가 기존 레이거노믹스에 비해 매우 광범위하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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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면 대(對)중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 기업이 가격뿐만 아니라 기술에서 경쟁력을 키우면 중국에 부품을 수출하는 국내 기업들의 수출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재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의 구조개혁이 성공한 뒤 나타날 새로운 수요에 맞는 수출 아이템을 발굴하고 중국 산업의 고도화에 대응한 정보통신기술(ITC) 등 하이테크 산업 육성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