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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학교서 장애친구 급식 돕는 학생들 “공존 배워요”

입력 | 2016-04-16 03:00:00

[토요판 커버스토리/갈 곳 없는 장애학생]20일은 장애인의 날… 싹트는 희망




14일 경기 고양시 국립 한국경진학교 체육관에서 정서장애를 가진 학생들과 인근 율동초등학교 학생들이 함께 어울리는 통합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임현석 기자 ihs@donga.com

14일 오전 경기 고양시 ‘국립 한국경진학교’ 체육관에서 조금 특별한 교육활동이 진행됐다. 발달장애 학생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이 학교가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을 초청해 통합교육 수업을 한 것. 율동초등학교 5학년 1반 학생 25명과 발달장애 학생 25명(초교 1, 2, 3학년)이 함께 듣는 수업이었다. 통합교육 프로그램 이름은 ‘친구야 반가워’였다.



장애를 이해하고 마음을 나누는 통합교육

오전 10시 반쯤 체육관에 모인 학생들 사이에서 침묵이 흘렀다. 아직 첫 만남이 어색해서였을까. “서로 처음 만난 친구들과 인사해요”라는 교사의 말에 율동초 학생들은 수줍게 웃으며 인사했다. 반면 한국경진학교 소속 학생들에게서는 쉴 새 없이 “안녕” 소리가 터져 나왔다.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더 컸다.

수업을 맡은 교사는 “언니 오빠, 형 누나야”라고 율동초 학생들을 한국경진학교 학생들에게 소개했다. 이어 조를 짠 뒤 같은 조 친구에 대해서 알아보는 퀴즈와 준비운동이 진행됐다. 어색함이 풀리는 데 30분이면 충분했다.

신문지 한 장 위에 모든 조원이 올라가는 게임이 시작되자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신문지 크기가 절반으로 줄어들자 외발로 신문지 위에 올라섰다. 학생들의 몸이 기우뚱했다. 몸무게가 40kg에 가까운 한 발달장애 학생이 신문지 위에 어떻게 올라서야 할지 몰라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때 율동초 한 학생이 인사를 하듯 상체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내 등에 타.”

다소 뚱뚱해 보이는 몸이 번쩍 올라탔다. 이들은 신문지 위에서 5초를 버텼다. 게임에서 승리한 뒤 두 학생은 마주 보며 웃었다. 아이들 사이에 장애라는 벽은 없었다.

율동초는 2014년부터 한국경진학교를 매년 세 번 방문한다. 인근 신일초 4학년 학생 28명도 이 학교를 7번씩 찾는다. 대화중학교 학생 37명이 꾸린 동아리와 주엽고교 학생 동아리 40명도 이 학교에 4, 5회씩 방문해 이와 같은 통합교육을 받는다. 서로 짝을 지어 이야기하거나 인근 산을 한 바퀴 돌며 산책을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한국경진학교 김은주 교장은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서로 대화하면서 산책하는 것조차 학창시절 동안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일”이라며 “사회에서 함께 어울리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을 백 마디로 가르치는 것보다 이렇게 실제로 대화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진학교와 인근 초중고교의 통합교육은 1997년 개교 이래로 이어져 온 전통 있는 프로그램이다.

“특수학교는 어떻게 보면 장애 학생에게는 천국일 수도 있지만 비장애 학생들과 어울릴 기회가 적다는 점에서 안타깝죠. 반면에 비장애 학생은 장애 학생을 직접 만날 기회가 없어 이들과 대화하는 방법도 모르고 외면하기 쉽죠. 우리 학생들이 서로를 조금씩 배우면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장애 학생들을 보듬는 능력은 사회 지도층이 될 친구들에게 필요한 덕목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김 교장은 이렇게 말하며 한국경진학교를 찾는 이 학교들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율동초 학생들을 인솔한 박미리 교사도 “아이들이 스스로 체험하지 않으면 생각하지 못했을 말을 한다”며 “장애 친구들은 몸이 불편하니까 우리가 도와줘야 한다는 말을 들을 때 뿌듯했다”고 했다.

김 교장은 “통합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학생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짜서 교사가 세심한 관심 속에 이를 진행해야 아이들이 공존과 상생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함께 학생들을 모아놓는 것만으로 효과가 나타나진 않는다는 것이다.



상생을 가르치는 학교 동산정보산업고

서울 노원구 동산정보산업고 학생 80여 명은 봉사 동아리를 꾸려 같은 구에 있는 서울정민학교로 점심시간마다 봉사활동을 나간다. 서울정민학교는 40학급 240여 명이 재학 중인데 모두 중증 지체장애를 갖고 있다. 중증 지체장애 학생 중에서 식사 보조인이 없이 스스로 밥을 먹을 수 있는 학생은 20여 명에 불과하다.

식사를 일찍 끝낸 동산정보산업고 학생들이 식사를 직접 도와주거나 식사 후 휠체어를 밀어주며 학교 근처나 교정을 산책하기도 한다. 산책이 끝나고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몸이 불편한 정민학교 학생들의 양치를 도와준다. 서울정민학교 신현무 교장은 “몸이 불편한 학생들이 식사 후에 산책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깊이 헤아려줘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최근엔 해외의 좋은 대학 입학에 필요한 ‘스펙’을 만들기 위해 지체장애 학생들과 사진을 남기고 이를 장애돌봄 활동으로 포장하려는 고교생도 많은데 이들과는 다르다는 것이 교장의 설명이었다.

서울시교육청 학생생활교육과 양한재 장학사는 동산정보산업고와 서울정민학교의 통합교육 사례를 공존상생 서울 교육의 가장 좋은 모범 사례이자 자랑으로 꼽는다.

“동산정보산업고 아이들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포트폴리오를 만들려는 게 아니에요. 봉사 동아리의 전통 때문에 산책을 시작한 아이들이지요. 상생과 공존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아이들의 가슴에 서서히 물들지요.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교육이 바로 이것 아닐까요?”

양 장학사는 한 해 봉사활동을 마무리한 동산정보산업고 학생들의 봉사소감문을 소개했다.

‘제가 서울정민학교 친구의 휠체어를 밀고 잠시 학교 밖을 나와 횡단보도를 건널 때였어요. 저를 스쳐가던 사람들이 휠체어를 바라보는 시선들을 느꼈어요. 휠체어를 외면하는 듯한 눈빛과 불쌍하다는 눈빛들이 지나갔어요. 저는 그때 장애를 갖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처음으로 알게 됐어요. 사람들의 눈빛을 견디는 것이 장애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소감문을 읽은 양 장학사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왜 다들 자기 지역에 특수목적고만 생기길 바랄까요. 특수학교에서 이렇게 큰 배움을 얻을 수 있다는 점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임현석 기자 l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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