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만이라도 알고 싶었다. 북한에서 탈출하기 위해 집을 떠난 부모님은 수개월째 아무 연락이 없었다. 그러던 중 한 탈북 브로커가 집을 찾아와 아버지가 쓴 편지를 건넸다. 브로커를 따라 가면 통화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브로커를 따라 며칠 동안 밤새도록 산을 넘은 끝에야 브로커가 건넨 휴대전화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9일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가 발표한 북한 실태 보고서 ‘통제된 사회, 단절된 삶’에 등장하는 탈북자 최지우 씨(가명)의 사연이다. 국제앰네스티는 휴대전화 사용이 자유롭지 못한 북한의 실태를 고발하기 위해 최 씨 등 탈북자 17명과 학자, 시민단체 관계자 등 전문가 19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아놀드 팡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조사관은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절대적인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해 휴대전화로 해외에 있는 가족들에게 연락하는 사람들에게 보복을 가하고 있다”며 “김정은이 정권을 장악한 후 통신에 대한 단속이 강화됐다”고 지적했다.
북한 주민들이 해외에 있는 가족과 연락하려면 중국 등에서 들여온 이른바 ‘중국 손전화’로 몰래 중국 통신망에 접속하는 방법뿐이다. 최 씨처럼 중국 손전화를 구하지 못한 주민은 브로커에게 수수료를 내야 한다. 통화가 성사돼도 추적의 우려 때문에 15초, 1분씩 끊어서 통화해야 한다. 암호를 사용하고 절대 상대방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 것도 감청 때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북한 주민들은 짧은 통화를 위해 엄청난 신변의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중국 손전화를 갖고 있거나 국제 전화를 한 것 자체가 북한에서는 처발 대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처럼 적대국에 거주하는 사람과 연락하다 적발되면 반역죄나 정보유출죄를 물어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보고서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북한 정권의 감시와 통제가 김정은이 집권한 후 더욱 강화됐다고 지적했다. 이 중에는 북한 당국이 휴대전화 감청과 불법 국제 전화를 적발하기 위해 해외에서 최신 장비를 들여왔다는 증언도 있었다.
아놀드 팡 조사관은 “그 무엇도 가족, 친구와의 연락이라는 인간의 기본적 요구를 충족하기 위한 시도를 억압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며 “북한 정권은 자국민에 대한 억압적인 통제를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호경 기자 whalefish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