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희 싱가포르 국립리퍼블릭 폴리테크닉대 교수
교수로부터 A4용지 한 장 분량으로 문제가 주어진다. 강의실은 학생들의 치열한 토론과 질문들로 넘쳐난다. 학생들은 노사 양측을 대변하는 팀으로 나뉘어 협상 테이블에 앉아 수업에서 배운 이론과 사례로 상대를 설득한다. 학생들이 강의실의 ‘주(主)’가 되어 수업을 이끌어 가는 순간이다. 교수는 수업 말미에 노사관계에 대한 경영학 이론을 설명하고 학생들의 토론에 대한 피드백도 잊지 않는다.
이는 필자가 속한 대학의 경영학 수업 풍경이다. 강의 시간 대부분은 학생 주도의 문제기반교육(PBL·Project/Problem-Based Learning)으로 이뤄진다. 단편적이고 암기 위주의 한국 교육현장에선 드문 광경일 것이다.
졸업생에 대한 기업의 평가 역시 호의적이다.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기에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나”와 같은 질문은 적어도 이곳에선 듣기 힘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실시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싱가포르가 한국을 앞지르는 것을 보면 묘한 질투심이 생긴다.
질문 없는 강의실과 문제의식 없이 노트 필기에만 사로잡힌 한국의 수업 현장은 미래에 대한 물음표를 생기게 만든다. 한국의 중고교에서 당장 PBL을 시도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 것이다. 하지만 대입제도에서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다소 떨어져 있는 초등학교 일부 과목에 PBL을 시범 도입해 학업 성취도를 시험점수 위주로 평가하는 관행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이는 ‘지식 위주의 암기 교육’에서 ‘배움을 즐기는 행복교육과 학생 중심의 교실수업’으로 전환한다는 교육부의 정책 방향과도 일치하기에 더욱 그렇다. 한국 교육 현장의 행복한 변화의 소식을 이곳 싱가포르에서도 들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김창희 싱가포르 국립리퍼블릭 폴리테크닉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