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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 비웃는 北… 재판 기록으로 본 무기 밀수출 실태

입력 | 2016-02-19 03:00:00

[“김정은, 대남테러 준비 지시”]
“네팔 호텔로 오라” 英중개상 접촉… 45% 선불 요구
“평양 오면 원하는 만큼 성능시험”… 무기 운송은 구매자에게 떠넘겨
BDA 제재 의식해 오만 은행 활용




2004년 네팔 수도 카트만두의 안나푸르나 호텔에서 두 사내가 마주 앉았다. 북한 조선광업개발무역주식회사 산하 혜성무역회사의 오학철과 영국 무기중개상 마이클 레인저였다. 은밀한 만남에서 북한의 10인치 방사포(240mm 다연장로켓) 3세트 수출이 성사되면서 레인저는 북한 무기판매상으로 본격적으로 나섰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앤드리아 버거 연구원이 18일 레인저의 재판 기록을 분석한 북한 무기 밀매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에서 북한이 국제 제재를 피해 무기 수출을 성사시킨 단면이 드러났다. 레인저는 2011년 4월 체포(2012년 유죄 판결)될 때까지 아제르바이잔, 예멘 등과 북한의 무기 거래를 중개하는 핵심이었다.

북한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국제 제재를 우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국인 무기상은 유용했다. 북한은 2007년 초 레인저에게 “6·25 때 골동품 소총을 수출하고 싶다”며 1차 핵실험(2006년 10월) 이후 유럽의 대북 제재를 점검했다. 레인저는 ‘당국 불허’라는 답변서를 혜성무역회사로 보냈다. 2010년 아제르바이잔이 휴대용 대공미사일(MANPADS) 수입을 추진하자 레인저는 “당신들이 원하는 ‘스팅어’ 미사일은 미국 정부의 허가를 못 받는다. 북한식 이글라(Igla) 미사일이 어떠냐?”고 접근했다. 싼 가격(국제 시세의 75∼80%)이 유인책이었다.

북한은 제재를 의식해 거래액의 45%를 보증금으로 요구했다. 또 구매자들이 평양까지 와야 하며 물건 인도 시 대금 완납 조건을 걸었다. 선적 순간부터 화물 책임도 떠넘겼다. ‘안전한 운송’을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 거래 완결 전에는 ‘샘플’도 보내지 않았다. “평양으로 오라, 원하는 만큼 성능 시험을 해 주겠다”가 북한의 답변이었다.

대금 지불 방법은 유로화였다. 2009년 콩고민주공화국 기갑장비 보수계약 때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버거 연구원은 “북한이 2006년 ‘방코델타아시아 사건(마카오 BDA 은행이 북한 자금 동결)’ 이후 달러화 거래를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레인저는 홍콩에 위장 회사를 세운 뒤 시중은행에 계좌를 개설했고 자금 송금은 오만 은행의 공항지점을 활용했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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