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 겸 미술작가 백현진展
‘어떤 동물에게 도구로 인식되기 이전의 물질’, ‘눈보라’, ‘벡터건 픽셀이건 나발이건’(왼쪽부터) 앞을 이동하며 사운드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는 백현진 작가.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PKM갤러리. 1층 전시실 구석에 마련된 신시사이저 앞에 묵묵히 서서 한동안 기묘한 전자음을 자아내던 백현진 작가(44)가 문득 인도 민속악기 슈루티를 한 손에 들더니 한층 괴이한 가락을 목에서 뽑아내며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공포영화 속 좀비를 연상시키는 경직된 몸짓으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 그는 2층 전시실 창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 동안 연주를 이어갔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신시사이저 앞으로 돌아오기까지, 2시간 정도가 흘렀다.
27일까지 이곳에서 개인전 ‘들과 새와 개와 재능’을 여는 백 작가는 매일 오후 4시경부터 사운드 퍼포먼스 ‘면벽’을 선보인다. 홍익대 조소과를 중퇴한 그는 1994년 작곡가 장영규 씨와 함께 아방가르드 팝 듀오 어어부 프로젝트를 결성해 뮤지션으로도 다양한 작업을 벌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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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뭔가 불편하면서도 묘하게 후련한 감흥이 눈과 귀를 붙들어 앉힌다. 사운드 퍼포먼스 속 백 작가의 음성에는 예쁘게 노래 부르길 거부하는 목청 좋은 이의 기색이 역력하다. 전자음과 붓질에서도, 그냥 마구 들이받고 싶지만 디테일 밸런스를 어쩔 수 없이 다 놓아버리지 못한 흔적이 보인다. 캔버스 구석구석 휘갈겨 썼다가 덮어 지운 글씨들 위에는 지그시 깨문 어금니 자국이 남아 있다. 전시 표제에 대해 갤러리 관계자는 ‘공중의 새와 들판의 개는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절대적인 존재’라고 설명했다. 각 어절의 첫 글자만 거꾸로 한번 읽어보자. 전시작 제목 중 하나는 ‘그것이 무엇으로 보이든, 그것은 당신의 것’이다. 02-734-9467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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