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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층, 일자리 찾아 외지로 떠나… 지역경제 침체 악순환

입력 | 2016-02-16 03:00:00

[동일본 대지진 5년]<下>고향을 등지는 사람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사회 지도층에 대한 신뢰를 잃은 일본 국민들은 대규모 시위로 세를 과시하기 시작했다. 2012년 6월 도쿄 시내 중심가에서 반(反)원전 시위(위쪽 사진)를 벌였고, 이 열기는 2015년 7∼8월 아베 정권의 안보법안을 반대하는 시위(아래쪽 사진)로 이어졌다. 아사히신문 제공

도쿄·이시노마키=장원재 특파원

재일교포 3세 하나가와 히데토시(花川英敏·장영민) 씨는 동일본 대지진 이듬해인 2012년 고향 이와테(巖手) 현 오후나토(大船渡) 시를 떠나 도쿄(東京)에 왔다. 아내와 노모, 세 자녀와 함께였다. 지금은 관광명소인 도쿄 스카이트리의 한 식당에서 점장을 맡고 있다.

5일 가게에서 만난 하나가와 씨는 “쓰나미(지진해일)로 운영하던 식당과 집을 모두 잃고 나니 허탈한 마음뿐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고향 친구들이 인터넷에 올린 사진을 보면 아직 가게 터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 언젠가 돌아가 내 가게를 하고 싶은데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와테에서 태어나 평생을 산 어머니(70)가 친구도 없이 무기력하게 있는 모습도 마음을 아프게 한다.

11일 아사히신문 집계에 따르면 동일본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동북 지역의 36개 지방자치단체는 대지진 후 약 15만6200명(전체의 15.6%)의 인구가 줄었다. 하나가와 씨의 고향인 오후나토의 경우도 2700명(6.6%)이 감소했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외지로 빠져나가니 지역 경기가 침체되고,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다시 인구가 유출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 인구 감소, 지역경기 침체 악순환

벌써 5년이 다 돼가지만 방사능 공포도 여전하다. 취재 도중 미야기(宮城) 현 이시노마키(石卷) 시에서 만난 한국인 결혼이민자 황모 씨(57)는 “마트에서 산 버섯의 모양이 조금만 이상해도 버릴 정도로 신경증에 시달리고 있다”며 “지인 중에는 쓰나미와 원전이 없는 곳으로 가겠다며 산지로 둘러싸인 군마(群馬) 현으로 이사 간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그 역시 사고 직후 상대적으로 안전한 한국으로 도망치기 위해 남편을 데리고 아키타(秋田) 공항까지 갔다가 ‘죽더라도 여기서 죽자’는 남편의 만류로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원전 사고의 직격탄을 맞은 후쿠시마 현 나라하(楢葉)의 경우 지난해 9월 피난 명령이 해제됐음에도 4개월 동안 돌아온 이들은 원래 주민수의 5.7%인 421명뿐이었다. 방사능 공포로 마을이 되살아날 것이란 확신이 없자 노인들만 고향에 돌아온 것이다. 이홍천 도쿄도시대 교수는 “30년 안에 수도권 인근에서 대지진이 발생할 확률이 70%라는 발표가 나오면서 일본 사회에서 재해에 대한 피로도가 증가하고 전반적인 자신감이 사라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 반세기 만의 국회 앞 대규모 시위

취재 중 만난 이들 상당수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정부를 믿지 못하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무기력한 사회 지도층에 실망한 국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2012년 반(反)원전, 2015년 안보법 반대를 외치며 10만∼20만 명이 국회를 포위했다. 일본에서 국회를 에워싼 대규모 시위가 열린 것은 1960년 안보 투쟁 이후 50여 년 만이다. 민주당 정권의 미숙한 대처는 2012년 말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등장을 불러왔다.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 전 아사히신문 주필은 “대규모 원전 반대 시위가 지난해 안보법 반대 시위로까지 이어졌지만 여전히 정치를 바꿀 만한 에너지를 형성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이시노마키=장원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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