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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도 못챙기고 몸만 빠져나와… “완제품 쌓여있는데” 한숨

입력 | 2016-02-12 03:00:00

[남북 ‘强대强 대치’]긴박했던 개성공단 철수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들 긴급회의 11일 서울 영등포구 은행로 중기중앙회 회의실에서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 30여 명과 중기중앙회 회장단 등이 긴급회의를 열고 비상대책위원회 설립 및 향후 대책과 관련한 내용을 논의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11일 오후 5시 전까지 순조롭게 진행되던 출입경 조치는 북한의 ‘추방’ 발표로 급격히 반전됐다.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발표부터 북한의 추방 조치까지 긴박했던 24시간을 개성공단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정리했다.

# 10일 오후 5시 서울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발표가 보도되자 개성공단 입주업체 화인레나운의 최연식 법인장(51)은 서둘러 수화기를 집었다. 연락을 받은 사무실의 직원들은 긴급히 회사에 나와 대책 마련에 나섰다. 급한 대로 5t 화물트럭 한 대를 날이 밝는 대로 최대한 빨리 개성에 올려 보내기로 했다. 개성에 남은 직원들은 밤새 짐을 정리했다.

# 11일 오전 8시 통일대교


흡사 이주행렬 같았다.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CIQ)로 향하는 경기 파주시 통일대교 검문소 앞으로 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개성공단에 가서 짐을 들고 오려는 차량들이 한꺼번에 몰린 것이다. 하지만 이들 차량 중 검문소에서 ‘미등록차량’으로 확인된 화물차들은 방향을 되돌려야 했다.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발표에 따라 사전에 허가를 받지 못한 차는 CIQ에 들어갈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 11일 오전 9시 개성공단

개성공단부속의원 간호사 김수희 씨(43·여)는 정부 조치에 따라 남쪽으로 입경할 채비를 마쳤다. 김 씨는 개성공단이 평소와 뭔가 다른 것을 느꼈다. 북한 근로자들이 출근하지 않았다. “평소보다 군인들의 수가 많아지고 이동도 더 많아졌어요. 원래 군인들이 보이지 않던 곳에서도 군인들이 보였고 휴전선 쪽에서도 군인들이 늘었어요. 모두 무장한 상태였어요.” 김 씨는 오전 10시 45분 경의선 CIQ에 들어섰다.

# 11일 오후 2시 반∼4시 반 CIQ

대형 화물차들이 하나둘씩 넘어오기 시작했다. 화물칸에 겹겹이 쌓인 종이상자에 의류업체 상표가 보였다. 승합차는 운전석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이 모두 황토색 포대자루로 가득 찼다. 입경한 심종태 씨(54)는 “갑작스러운 전면 중단 발표에 밤새도록 철수 준비를 하느라 직원들이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고 말했다.

CIQ가 문을 닫을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차 바깥쪽까지 실은 짐을 줄과 테이프로 묶고 검문소를 통과하는 차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3년 전 개성공단 폐쇄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냄비 제조업체 ‘창신’의 전주명 씨(66)가 몰고 온 4.5t 화물트럭에는 스테인리스 원자재가 가득 쌓여 있었다. 전 씨는 “남한에서 가지고 간 그대로 다시 가져왔다”며 “북측 세관원이 ‘좋은 대통령을 둬서 좋겠습니다’라며 비꼬듯이 말하기에 무시하고 나왔다”고 밝혔다.

북한의 추방 조치가 이뤄지기 전 개성에서 물품을 싣고 돌아온 김재명 개성자수 대표는 “가져와야 할 제품의 50분의 1 정도밖에 못 가져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고작 30분 후면 이만큼의 짐이라도 들고 올 수 있었던 김 대표가 운이 좋은 사람이 될 줄은 몰랐다. 북한 수뇌부만 빼고.

# 11일 오후 5시 남한과 북한


북한이 남한 정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개성공단 내 남측 인력을 모두 추방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날 차를 올려 보낼 계획을 짜던 입주기업 관계자들은 경악했다.

최 법인장이 개성에 남아 있는 직원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승용차에 제품을 싣고 나오던 중 북한 세관에서 ‘짐은 모두 놓고 가라’는 말을 듣고 빈손으로 내려가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최 법인장은 “다른 생각하지 말고 안전하게만 돌아오라”고 말했다.

# 11일 오후 9시 40분 CIQ

통일부 등에 따르면 개성공단에 남아있던 우리 측 관계자 280명은 오후 9시 40분경부터 김남식 개성공단관리위원장의 인솔에 따라 차량 247대에 나눠 타고 전원 CIQ로 귀환했다. 신발업체 J&J 법인장 강성호 씨(62)는 “사전에 알았으면 좀 정리하고 물건도 옮길 시간이 있었을 텐데 갑작스럽다. 심정이야 이루 표현할 수 없다”며 말끝을 흐렸다. 이어 “피해액은 따져봐야겠지만 몇십억 원은 될 것 같다. 개인물품은 옷가지만 챙겨서 나왔다”고 허탈해했다.

추방 시한(오후 5시 반)을 4시간 넘겨 귀환한 것은 완제품과 재료 등의 봉인 작업 때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2013년 차량 위에 가득 짐을 싣고 돌아오던 모습은 이번에 찾아볼 수 없었다. 북한의 동결 조치로 개인 소지품을 제외하고는 제품 하나도 들고 나올 수 없어서였다. 옷가지도 못 챙겨 나온 기업인들도 적지 않았다.

파주=김성규 sunggyu@donga.com·김호경·유원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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