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카 바이러스 유전자 백신을 개발 중인 국내 제약사가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임상시험 승인 절차를 밟고 있다. 진원생명과학이 미국 바이오테크사인 이노비오와 공동 개발해 글로벌 시장으로 직행할 수 있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다. 하지만 실제로는 혁신적 신약에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혜택을 주는 미국과 달리 한국에선 언제 승인이 나올지 모르는 꽉 막힌 규제와 느려터진 행정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신약 허가는 모두 ‘약물 발굴, 전임상시험(동물실험), 임상시험(인체실험), 인허가’ 단계를 거친다. 절차는 비슷해도 시험과 인허가 과정에서 제약사가 체감하는 규제의 강도는 하늘과 땅 차이다. 미국은 안전성에 따라 시판까지 걸리는 기간을 대폭 줄여주는 장치를 곳곳에 둔 반면 한국은 지나치게 신중한 행정을 명분으로 시간 끄는 게 습관처럼 돼 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어제 바이오업체 관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바이오헬스산업이 미래 신성장동력이라고 강조했다. 현실을 알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일본은 2014년 11월 재생의료에 사용하는 줄기세포는 임상시험 3단계를 모두 거치지 않아도 되도록 세계에서 가장 신속한 승인제도를 도입했다. 영국의 리뉴런, 이스라엘의 플러리스템 등 글로벌 바이오기업의 일본 진출이 이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의회도 지난해 7월 의약품 인허가 기간을 단축하는 ‘21세기 치유법’을 통과시켰다. 한국은 지난해 6월 혁신적 신약의 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특별법을 입법 예고했으나 시민단체가 반대한다는 이유로 꼼짝 못하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