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금융 21兆 조기집행]
○ 아랫돌 빼 윗돌 괴기
최근 한 달여 사이에 1분기(1∼3월) 정부의 재정 조기집행 규모는 ‘125조 원→138조 원→144조 원’으로 두 차례나 바뀌었다. 경기 회복의 불씨가 사그라지기 전에 최대한 돈을 많이 풀겠다는 의도다. 1분기 조기집행률은 당초 29.2%에서 30.0%로 올라서고, 상반기(1∼6월)에만 올해 재정의 58%가 투입된다. 여기에 수출 지원을 위한 무역금융을 원래 계획(57조2000억 원)보다 10조6000억 원 많은 67조8000억 원을 집행하는 등 정책금융도 총 15조5000억 원 늘리기로 했다.
○ 정책 효과는 ‘글쎄’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1분기 성장률을 0.2%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그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이 많다. 추가경정예산(추경)처럼 돈을 추가로 푸는 것이 아니라 밑돌 빼서 윗돌로 쓰듯 시기만 앞당긴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연초에 당겨 쓰기를 한 탓에 연말에 재정절벽에 부딪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2014년 4분기(10∼12월)에는 연말 재정절벽으로 인해 0.3%의 ‘성장률 쇼크’를 경험했다.
마른 수건을 짜내듯 수출 총력전에 나서기로 했지만 저유가와 중국의 성장둔화라는 큰 물줄기를 바꾸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란 특수에 대한 기대감이 높지만 수출을 획기적으로 늘릴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는 “주력산업의 구조조정과 수출 품목 다변화 등을 통해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해야 회복의 기회가 온다”고 말했다.
그나마 일부 정책은 대책의 가짓수를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포함시켰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일례로 정부는 ‘내 집 연금 3종 세트’의 출시 시기를 올 2분기(4∼6월)에서 3월로 앞당기기로 했다. 고령층의 노후소득을 늘려 소비를 확대하겠다는 구상이지만 1∼2개월 앞당긴다고 소비 진작에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 추경 및 금리 인하 가능성
한국은행이 추가 금리 인하를 통해 정부 경기부양책의 지원 사격에 나설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달 16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금리 인하에 대한 시그널을 준 뒤 3, 4월에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런 기대감을 반영해 시장금리의 지표가 되는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1.496%로 사상 최저치를 경신해 기준금리(연 1.5%) 밑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신중론도 제기된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금리 인하가 소비, 투자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오히려 가계부채 증가, 외국인 자금 유출 등 부작용만 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단기부양책을 내놓은 만큼 이제는 고통스럽더라도 경제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취임 일성이 ‘구조개혁’이었지만 구체적인 액션플랜(실행계획)은 나오지 않고 있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돈을 주고 산 성장은 후유증이 생긴다”며 “구조개혁으로 경제 체질을 개선해야 중장기적으로도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손영일 scud2007@donga.com·신민기 / 정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