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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이슈]호랑이 털 1000만 가닥 한 올 한 올 “살아있네”

입력 | 2016-01-30 03:00:00

한국영화 CG의 힘




영화 ‘대호’의 또 다른 주인공은 컴퓨터그래픽(CG)이다. 대호 역을 대신하는 배우가 연기하는 장면을 촬영한 후(①) 미리 완성해 둔 대호 CG를 얹는다.(②, ③)그림자나 색상, 농도의 변화 등과 같은 3차원 질감을 넣어 생생함을 높이는 렌더링 작업을 거쳐 완성했다.(④) 뉴 제공

지난해 12월 개봉한 영화 ‘대호’의 주인공은 누굴까.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포수 천만덕 역을 연기한 배우 최민식을 떠올리겠지만 영화를 봤다면 다른 얼굴을 떠올릴 가능성이 크다. 바로 영화에서 마지막 조선 호랑이로 등장하는 ‘대호’다. 100% 3차원(3D) 컴퓨터그래픽(CG)으로 구현된 거대한 호랑이 대호는 영화 전체 러닝타임 139분 중 40%에 이르는 약 50분 동안 등장한다.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표정 연기, 감정 표현으로 만덕과 때로는 대결하고 때로는 교감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개봉 당시 “영화의 주인공은 최민식과 ‘김대호 씨’”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이 대호는 국내 CG 기술로 탄생했다. 대호는 어떻게 탄생했고, 한국 영화 CG의 수준은 어디까지 왔을까.



털 1000만 가닥 심은 ‘대호’


그동안 한국 영화에서 자체 기술력으로 100% 3D CG로 구현한 동물 캐릭터는 2013년 ‘미스터 고’의 고릴라 링링이 유일했다. 그나마 링링은 인간과 움직임이 유사한 영장류로 모션캡처 기술(사물에 센서를 달아 움직임 정보를 받아 영상 속에 재현하는 기술)을 사용해 캐릭터의 움직임을 만들었다. 하지만 대호는 네 발로 걷는 호랑이라 사람에게 센서를 다는 모션캡처 방식으로는 움직임을 표현할 수 없었다. 맹수인 호랑이가 사람을 공격하는 장면을 촬영해야 하는데, 유사한 장면을 담은 영상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참고할 자료가 부족한 상태였다. 여기에 수컷 호랑이인 대호 외에도 대호의 어미와 짝, 새끼 호랑이 등 호랑이 가족을 만들어야 했다.

대호의 CG 제작 업체인 ‘포스(4th) 크리에이티브 파티’의 조용석 본부장은 “등장 분량이 많고 중요한 역할이었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정공법으로 도전한 것이 완성도 높은 대호가 나온 비결”이라고 말했다. 대호 캐릭터를 완성하는 데 1년, 촬영을 거쳐 캐릭터를 영상에 합성하는 데 추가로 6개월 등 모두 1년 6개월이 걸렸다.

대호가 나오기까지는 총 11단계의 작업을 거쳤다. 우선 호랑이의 외형을 디자인했다. 전체적인 몸의 형태는 물론이고 혀 이빨 눈알 등 신체의 모든 부분을 디자인했다. 그 뒤 호랑이의 피부 질감이나 가죽 무늬 등을 표현해내는 텍스처 작업, 그 위에 근육의 움직임을 얹는 리깅 작업을 했다. 실제 촬영 영상 위에 대호의 움직임을 배치하는 카메라 트래킹 작업과 호랑이의 동작, 얼굴 표정 등 각종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애니메이션 작업을 마친 뒤에는 근육과 털의 움직임을 호랑이의 동작에 맞추는 시뮬레이션을 수행했다. 뛰어가는 호랑이의 살이 출렁이는 느낌이나 바람에 털이 쓸리는 모습 등이 이 단계에서 만들어졌다. 그 뒤에 호랑이의 모습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룩 디벨로프먼트, 주변 환경에 맞춰 호랑이에게 그림자를 주는 라이팅 렌더링, 호랑이의 입에서 입김이 뿜어져 나오거나 피가 뚝뚝 떨어지는 등 특수효과를 주는 이펙트(FX) 작업이 진행됐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입력된 데이터를 모두 합성해 실제 영화에서 보여지는 영상으로 만들어내는 렌더링 작업을 거쳐 완성했다.

촬영 과정도 일반 영화보다 훨씬 복잡하다. 대호가 등장하는 장면은 현장에서 4, 5번 반복해서 촬영했다. 대호가 없는 빈 화면을 찍은 뒤 털로 된 공(퍼볼)과 금속 공(크롬볼)을 놓고 한 번씩 더 찍는다. 퍼볼은 현장에서 대호의 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크롬볼은 그림자가 어떻게 지는지 확인해 CG에 반영하기 위한 도구다. 그 뒤에 대호와 비슷한 크기의 판을 놓고 다시 한 번 찍는다. 나중에 CG팀이 이 판 위에 대호 그래픽을 얹는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판을 놓고 찍는 대신 현장에서 대호 역할을 대신한 배우 곽진석이 대호를 연기하는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움직임이 크거나 사람과 밀접하게 접촉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는 판으로는 대호의 움직임을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조 본부장은 “호랑이 한 마리에 털을 1000만 가닥 이상 심었다. 만약 개인용 컴퓨터(PC) 1대로 전체 호랑이 출연 분량을 렌더링했다면 1000년 이상이 걸렸을 거다. 그만큼 섬세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방대한 작업”이라고 했다.



영화 ‘히말라야’ 속 칸첸중가 등반 장면(아래 사진)은 강원 영월군의 한 채석장(위)에서 눈을 쌓아 찍은 후 CG 작업을 거쳤다. CJ E&M 제공

CG 없는 한국 영화 없다

‘대호’ 외에도 최근 한국 영화에서 CG의 비중은 크게 늘었다. ‘대호’와 함께 지난해 12월 개봉한 영화 ‘히말라야’ 역시 CG의 비중이 큰 영화다. 위험한 등반 장면을 모두 실제로 촬영하는 것이 불가능한 데다 약 3주에 걸친 해외 촬영 기간에 관련 장면을 모두 소화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구조 장면을 촬영한 뒤 눈 폭풍이 몰아치는 날씨를 합성하거나, 강원 영월 세트장에서 찍은 장면 위에 히말라야의 실제 등고선 데이터를 활용한 산 CG를 입히는 식으로 약 1200컷에 CG가 들어갔다. 영화 전체 장면의 80% 이상이 CG의 힘을 빌린 것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로봇, 소리’는 CG로 시작해 CG로 끝난다. 영화는 주인공 로봇 ‘소리’가 인공위성에서 떨어져 나와 지구로 추락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마지막 장면인 ‘소리’가 모래산을 기어오르는 장면에서는 소리의 팔다리를 움직이는 스태프의 모습을 지우는 데 CG 작업이 들어갔다.

‘히말라야’ CG 제작 업체인 라스카의 박의동 대표는 “7, 8년 전만 해도 CG가 들어간 영화와 들어가지 않은 영화를 구분했지만 약 4년 전부터 거의 모든 영화에 CG가 들어가기 시작했다”며 “차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도 실내에서 촬영하고 야외 화면을 따로 촬영해 CG로 삽입하는 경우가 많다.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시간대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데다 배우들도 연기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판타지나 재난 영화처럼 CG가 핵심인 장르가 아니더라도 전체 비용을 낮추고 촬영을 수월하게 진행하는 데 CG가 필요하다.



CG 업체 대형화, 해외 진출

이처럼 한국 영화에서 CG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CG 제작 산업의 규모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수년 전까지 업체당 직원 10∼20여 명으로 영세했던 업체들이 100명 이상의 인원을 갖추며 대형화하고 있다. 업체마다 전문화, 특성화된 분야가 생기면서 컨소시엄을 구성해 한 작품의 CG 작업을 여러 업체가 나눠서 하기도 한다. CG 관련 비용이 영화 제작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이다. 산업(영화 외에 게임, 애니메이션 등 모두 포함) 전체 매출액은 2011년 약 2101억 원에서 2013년 약 2441억 원으로 연평균 약 8% 증가했다. 종사자 수 역시 같은 시기 1171명에서 1349명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발달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국 진출도 활발하다. 쉬커(徐克) 감독의 ‘적인걸 2’ ‘지취위호산’, 저우싱츠(周星馳) 감독의 ‘서유기’ 등 최근 중국에서 좋은 흥행성적을 낸 블록버스터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에 덱스터, 매크로그래프, 디지털아이디어 등 한국 업체의 이름이 올라 있다.

하지만 CG 산업의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CG 업체 관계자는 “제작비를 산정할 때 주로 인건비만 포함이 된다. 업체 간 가격 경쟁이 심해 그런 식으로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는 연구개발에 투자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한 영화에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CG 관련 노하우를 쌓았더라도 이를 소프트웨어로 개발하는 등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는 원천기술로 만들 시간이나 자본이 없다는 뜻이다.

조용석 본부장은 “한국의 영화 관련 CG 제작업은 시장 규모가 작고 CG에 책정되는 제작비도 크지 않다. 그에 비해 CG에 대한 눈높이는 굉장히 높고 요구사항도 많다”며 “중국 진출을 모색하는 것도 이런 한국 현실에서 수익을 내기 쉽지 않다는 것을 업체들이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의동 대표 역시 “과거와 비교해 CG 예산을 정해 놓고 무조건 그 가격에 맞춰 달라는 식으로 요구하는 경우는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한국 영화는 현재 포화 상태고, 규모가 큰 영화도 몇 편 나오지 않는다. 영화 산업 전체에 대한 지원을 늘려 시장 규모 자체를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새샘 iamsam@donga.com·김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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