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심 의식, 영향력 과시하려 남발… 96개는 간판만 걸고 회의 안 열어
문화다양성위원회 설치의 모태는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의원이 2012년 12월 발의한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안’이다. 법안 발의 당시 정부는 새로운 위원회를 만드는 것에 난색을 표했지만, 국회는 아랑곳하지 않고 2014년 5월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위원회 설치와 운영에 관한 부담은 전부 문체부가 떠맡게 됐다. 문체부 관계자는 “사회적 공감대를 모으는 과정 없이 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20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통해 2014년 7월 이후 설치된 정부 위원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신설 위원회 33개 중 23개(70%)가 의원입법을 근거로 만들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다양성위원회, 공인중개사정책심의위원회, 화학물질평가위원회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7월 정부가 공식 발표한 전체 위원회 현황(총 549개)을 바탕으로 이전 1년간의 위원회 활동을 파악하기 위해 2014년 7월을 기준으로 삼았다.
광고 로드중
▼ 정부가 폐지한 위원회도 의원입법으로 부활 ▼
의원이 위원회 양산
의원들은 일단 위원회를 만드는 데는 결사적이지만 이후 ‘관리는 정부가 할 일’이라며 무책임으로 일관한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현재 549개 정부 위원회 가운데 최근 1년간 단 한 번도 회의를 개최하지 않은 위원회는 96개(17%)에 달한다. ‘개점휴업 위원회’는 대부분 의원입법으로 만들어진 자문위원회다.
공인중개사정책심의위원회의 경우 지난해 단 한 번 회의를 열었을 뿐이다. 그나마 공인중개사 시험에 관한 사항을 논의하는 데 그쳤다. 공인중개사정책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하겠다는 당초 취지는 무색해진 지 오래다. 국토부 관계자는 “과거 폐지된 공인중개사시험위원회랑 이름만 다를 뿐 하는 일은 똑같다”고 꼬집었다.
광고 로드중
의원들의 위원회 설치 입법 남발로 가장 곤혹스러운 곳은 국무총리실이다. 최근 1년간(2014년 7월∼2015년 6월) 신설된 위원회 중 총리 소속 위원회가 5개로 국토부와 함께 가장 많았다. 전체 위원회 549개의 11.8%(65개)가 총리 소속이다. 의원들은 ‘위원회 역할이 각 부처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것인 만큼 총리실에 두는 게 맞다’는 점을 명분으로 든다.
하지만 실상은 ‘격’을 따지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국무총리실이 최근 일부 위원회의 소속을 ‘총리 산하’에서 ‘각 부처 산하’로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했다가 국회에서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대통령 소속으로 두기에는 청와대 눈치가 보이고 그렇다고 각 부처에 두자니 격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슬그머니 총리실로 미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