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대한민국 헌정사에 기록될 만한 날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 계류된 민생법안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 경제단체와 시민단체들이 주도한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 1000만 서명운동’에 참여했다. 박 대통령은 경기 성남시 판교역 광장에서 열린 행사에 들러 서명한 뒤 국민의 동참을 촉구했다. “얼마나 답답하면 서명운동까지 벌이겠습니까. 그래서 힘을 보태드리려고 참가했습니다”라는 대통령의 말에 공감하는 국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이지만 법안을 발의할 수 있어 사실상 입법 주체이기도 하다. 그런 대통령이 입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동참한 것은 전례가 없다. 1986년 직선제 개헌 서명운동처럼 ‘입법운동’은 권위주의 정권 시절 야당이나 사회단체의 전유물이었다. 대통령이 추운 날씨에 거리 서명까지 하는 지경이 됐으면 ‘야당 독재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 등장한 이후 야당은 자신들 뜻에 맞지 않으면 법안 처리는커녕 심의도 하지 않았다. 야당이 ‘법안 연계 처리’를 고집해 여당이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를 위해 국회법 개정안을 ‘거래’했다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일도 벌어졌다.
그럼에도 국가원수인 대통령마저 장외(場外)로 나서는 현실은 안타깝고 불편하다. 선진화법은 2012년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있을 때 주도해 통과시킨 법이다. 박 대통령은 야당 탓만 하기 전에 ‘원죄’를 인정하고 아프게 반성했는가. 길거리 서명운동보다는 야당 대표와 국회의장을 청와대로 초청해서, 아니 직접 찾아가서 호소하는 것이 대통령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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