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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테러 이후 백인 시선 싸늘”… 美워싱턴 이슬람사원 가보니

입력 | 2015-12-28 03:00:00

“이웃 교회 크리스마스 방문 엄두 못내”… “트럼프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
텍사스 사원 화재… 방화여부 수사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낮 12시 10분. 미국 워싱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1957년 개관) 이슬람사원인 ‘더 이슬라믹센터’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오후 기도시간에 맞춰 무슬림 40여 명이 줄지어 들어서고 있었다. 백악관 인근에 위치한 이곳에서 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압바시 씨는 사원 내 유일한 아시아인인 기자를 보자 “어떤 일로 왔느냐”며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잇단 테러 후 무슬림들이 크리스마스 연휴를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하다”고 하자, 그는 기자의 손을 붙잡더니 사원 한쪽으로 안내했다. 압바시 씨는 “백인들은 겉으로는 대부분 무슬림이 IS와 별 상관없다고 하면서도 우리를 보는 시선이 싸늘해졌다”며 “지난해 크리스마스 땐 이웃 교회와 교류하며 인사도 주고받았는데 올해는 그런 게 없다”고 푸념했다.

20여 분 남짓 기도하던 자영업자 이스마엘 모하메드 씨는 “무슬림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는 공화당 대선후보 선두주자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꾸란 훼손 등 최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슬림 혐오 범죄를 조목조목 나열했다. 모하메드 씨는 “기독교와 이슬람이 서로 종교만 다를 뿐 평화를 사랑하는 것은 똑같은데 종교적 신념을 지키는 것 자체가 이렇게 위협으로 간주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크리스마스 날인 25일 텍사스 주 휴스턴의 이슬람사원에선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해 경찰이 방화 여부를 놓고 수사에 들어갔다.

기자는 앞서 지난달 IS의 파리 테러 후 이곳을 찾았었다. 당시 만난 무슬림 중 일부는 “시간이 지나면 기독교인들도 우리를 이해할 것”이라거나 “곧 다시 잘 지낼 수 있지 않겠느냐”고 희망 섞인 얘기를 했다.

그러나 한 달 후 이곳에서 다시 만난 무슬림들은 체념하는 모습이었다. 택시 운전을 하는 젊은이 압둘 씨는 “워싱턴에 산 지 5년 됐다. 크리스마스에 성가대 노래도 들을 겸 교회나 성당으로 놀러간 적도 있는데 올해는 엄두도 못 낸다. 교회 문턱을 제대로 들어설 수나 있겠느냐”고 말했다.

사원을 나서면서 백인 보수층의 편견과 IS 테러가 뒤섞여 당분간 백인 주류 사회와 미국 내 무슬림 간 장벽이 높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슬림도 필요하다면 목소리를 내겠다는 분위기다. 무슬림 이익단체인 미국-이슬람관계위원회(CAIR) 이브라힘 후퍼 대변인은 26일 CNN 인터뷰에서 “무슬림 사이에선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내년 대선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생각이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