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에서 분출되는 ‘험지(險地)출마론’을 보는 심정은 답답하다. 출마자들 사이에 정치지형이 불리한 지역구를 피하려는 물밑싸움은 역대 공천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화두로 떠오른 적은 없다. 친박(친박근혜) 핵심인 홍문종 의원은 24일 조윤선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의 서울 서초구 출마 선언에 대해 “험지에 나가 성공할 만큼 체력이 단단하지 않다”며 김황식 전 국무총리, 안대희 전 대법관과 함께 “인큐베이터에 넣어서 정치적 거목으로 성장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세 사람 모두 친박계로 분류된다. 반면 험지 출마 후보로는 비박(비박근혜) 중진 이재오 의원을 꼽았다.
험지출마론은 내가 출마하기 꺼려지는 지역에 네가 나가라는, 영화 ‘친구’의 “니가 가라 하와이”의 정치 버전이다. 어감도 불편하다. 새누리당이 유리한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 서울 강남권 지역 외에는 험지라는 뜻이다. 외교관들은 정정(政情)이 불안하고 소득수준이 낮은 중동이나 아프리카를 험지로 치는데 새누리당 인사들이 ‘험지’ 운운하는 건 유권자 모독이다.
본질은 친박과 비박의 공천권 갈등이다. 새누리당은 4월 의원총회에서 전략공천을 배제한 상향식 공천을 의결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진실한 사람’ 운운하고 측근들이 양지(陽地)인 TK 지역으로 몰려가자 비박계가 “박심을 업은 사람들은 수도권으로 가라”며 험지출마론에 불을 붙였다. 김무성 대표도 김 전 총리와 안 전 대법관을 만나 험지 출마를 요청했다. 이런 게 전략공천이 아니고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