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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산케이는 무죄, ‘제국의 위안부’는?

입력 | 2015-12-23 03:00:00

전쟁터의 위안소에 갇힌 인질의 스톡홀름 증후군을 동지적 관계로 오해
위안부 전쟁범죄 기획한 주범은 일본 제국주의와 군부
민간업자, 순사, 면서기는 하수인
국제법, 역사, 사회학적 서술에서 문학 연구자의 한계 드러내




황호택 논설주간

서울의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위안부 소녀상에 관해서는 그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외교공관 앞이 아닌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양대 김용운 명예교수는 “위안부 소녀상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후손에게 자존심을 내세울 만한 여성을 내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이 같은 견해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보지만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시각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박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그는 “위안부의 평균 나이가 25세였다는 자료를 근거로 실제 위안부를 상징하는 상일 수 없다”면서 <소녀상은 ‘국가’를 위해 동원돼 일본군과 함께 전쟁에 이기고자 그들을 보살피고 사기를 진작한 모습을 은폐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안에 든 부분은 법원이 삭제 결정).

박 교수는 소녀의 단발머리는 단정한 학생처럼 보이게 만들지만 위안부의 대부분은 학교 교육을 아예 혹은 조금밖에 받지 못했다고 기술한다. 그 시대 여성의 대부분이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위안부의 교육 수준이 왜 제기돼야 하는지 박 교수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다.

‘제국의 위안부’는 다무라 다이지로의 소설 ‘춘부전(春婦傳)’을 인용하며 전쟁터에서 일본군과 위안부 사이에 싹트는 사랑과 우정을 소개한다. 일본군은 위안부들에게 귀한 계란과 파인애플을 사주고 추울 때 모포를 덮어준다. 위안부들은 전쟁에 나가기 전 무서워 우는 일본 군인들에게 ‘살아서 돌아오라’고 위로한다. 군인들은 위안부들에게 “사랑한다” “결혼하자”는 고백도 한다.

박 교수는 이런 사랑과 평화가 가능했던 것은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가 기본적으로 동지적 관계였기 때문이었다고 분석한다. 보이는 현상만을 놓고 보면 사실에 가까운 묘사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전형적인 스톡홀름 증후군에 해당한다. 납치범에게 감금된 인질이 납치범에게 감정적으로 동조돼 그들을 옹호하고 지지하게 되는 이상심리 현상이다. 스톡홀름 증후군이 자유의사가 억압된 상황에서의 성적 유린이라는 국가범죄의 본질을 가릴 수는 없다.

‘제국의 위안부’가 인용한 저널리스트 센다 가코의 책에는 어용 매춘업자들이 주재소 순사나 면장을 대동하고 위안부를 모집했다는 인터뷰가 수록돼 있다. 일본국과 일본군은 뒤에 숨어 있었지만 반인륜 범죄를 기획하고 실행한 주범이고, 순사와 면장을 데리고 시골 마을을 돌아다닌 사람들은 하수인이다. 그런데도 박 교수는 ‘국가로서의 발상과 기획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는 있지만 위안부의 고통이 물리적으로 업주나 군인에 의한 것인 이상 국가범죄로 규정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217페이지)고 면죄부를 주려 든다.

박 교수는 우리가 접하기 어려웠던 위안부 관련 자료들을 발굴했으나 픽션과 팩트를 뒤섞고 그 해석에 오류가 많다. 문학 연구자인 박 교수가 형사법적 국제법적 사회학적 역사학적 지식의 축적이 충분한지 의심이 들 정도다.

일제의 하수인들은 위안부를 모집할 때 “광목 공장에 취직시켜 준다” “돈도 벌고 식사도 제공한다” 같은 감언이설로 여성과 그 가족을 속였다. 전쟁터에서 몸이 아픈데도 쉬지 못하고 줄을 서 기다리는 군인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일임을 정확하게 설명했다면 따라 나설 조선인 여성은 없었을 것이다. 설사 일부 장소에서 ‘자발적 매춘’이 있었더라도 이것은 위안부라는 큰 그림의 범죄성을 부인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박 교수가 책에서 ‘위안부들이 전쟁터에까지 함께 간 것은… 왕 언니(포주?)가 미군의 팀스피리트 훈련에 간 것 같은 원정이었다’며 미군기지 윤락여성에 비유한 것은 국가의 개입과 자발성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모욕적 표현이다.

나는 세월호 사건 직후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과 관련해 사실과 다른 기사를 쓴 산케이신문의 가토 다쓰야 기자를 재판에 회부한 것은 잘못이라고 본다. 이런 유의 ‘쓰레기 기사’는 무시하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박 교수에 대한 검찰의 기소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소에 따른 것이다.

일제는 패망하면서 불리한 자료는 닥치는 대로 소각했지만 할머니들의 생생한 육성과 현재 남아 있는 자료만으로도 일본의 전쟁범죄는 입증하기에 넉넉하다. 꽃 같은 나이에 끌려가 일본군의 ‘공동변소’(‘제국의 위안부’에서 재인용) 역할을 강요받은 할머니들의 명예를 위해 법원이 옳고 그름을 가려줄 필요가 있다.

황호택 논설주간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