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러시아 극동은 기업인들 사이에서 ‘얼음이 녹는 빙하’에 비유된다. 규제가 풀리면서 수많은 외국 기업과 투자자들이 몰려가고 있지만, 한순간의 방심으로 크레바스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 연해주에서 만난 외국기업 임직원 대부분 창고에 쌓아둔 상품을 챙기거나 귀국 채비를 하고 있었다. 10월22일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서 만난 독일인 톰 벤 데어 린데 씨는 “저유가와 루를화 평가절하에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서방의 경제 제재까지 겹쳐 러시아 극동 시장도 외국 기업의 ‘무덤’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혹독한 환경에서 롯데, 포스코, 현대상선 등 한국 기업들은 투자하며 수익을 늘리고 있어 특별한 주목을 받고 있다.
롯데는 극동에서 소비자 친화적인 제품을 수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륙에서는 롯데호텔모스크바점 개설 이후 브랜드 확산 효과도 보고 있다. 롯데 관계자는 “롯데호텔이 러시아에서 안착한 뒤 브랜드 인지도가 확산되면서 초코파이와 같은 제과 제품 수출도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롯데는 극동과 모스크바를 거점으로 삼아 카자흐스탄의 1위 제과업체인 라하트를 인수하고, 우즈베키스탄의 수르길 가스전을 개발하고 있다.
남 북한과 러시아가 추진하는 나진-하산 프로젝트에서 합자 사업자로 참여하고 포스코는 장기적인 접근 전략이 뛰어난 기업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포스코는 러시아가 불황기를 맞고 있지만 상품 수출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 회사는 장기 전략 투자의 일환으로 러시아 극동조선소에 선박용 후판을 팔아왔다. 이 조선소는 소련 시절 러시아 태평양 함대의 수상함과 잠수함을 수리해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집권한 뒤부터는 러시아의 전략 기업으로 지정돼 천 톤급 상선을 제조하는 회사로 변신했다. 선박 회사 재편에 따른 도크 건설 등으로 이 회사의 철강 수요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포스코가 이 조선소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블라디보스토크에 지사를 두고 나진-하산 투자프로젝트를 계기로 러시아 고위층과 깊은 관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이석배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는 “살아남은 기업들은 극동을 발판으로 삼아 유라시아 철도를 타고 수천 km 떨어진 옛 소련 위성 국가 곳곳에다 상품을 뿌릴 수 있다”며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후광 효과를 얻으면 성공 확률을 더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블라디보스토크=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