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vs 소수인종… 보수 vs 진보 오바마 “편협함에 맞서 싸워야”… 저커버그 “전세계 무슬림 지지” 알리 “이슬람 이용하려는 술책” 공화 지지층 65%는 “발언 지지”… 트럼프 “경선 절대로 포기 안해”
미국 사회가 도널드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 금지 발언’ 이후 갈가리 찢기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라는 명분 아래 잠복돼 있던 이슬람 사회에 대한 주류층의 뿌리 깊은 반감이 이번 일을 계기로 폭발하면서 인종 간, 진보와 보수 간 갈등이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내년 대선을 앞두고 어느 때보다 정치적으로 양분돼 있는 미국 사회 내 분열의 정도가 더 심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오바마, “편협함에 맞서야”
트럼프의 발언 이후 직접적인 언급을 자제하던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9일 사실상 트럼프를 겨냥해 “편협하다”고 비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미 의회에서 열린 노예제 폐지 기념 연설에서 “우리는 모든 형태의 편협함에 맞서야 하며, 그들이 어떤 인종인지 어떤 종교를 믿는지에 상관없이 우리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자유와 결부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가 아무리 분열되거나 절망한 듯 보여도 모든 형태의 편협함에 맞서 저항하는 데 실패한다면 이는 (노예제를 극복했던) 과거의 노력들을 배반하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광고 로드중
유대계인 그는 “우리가 속한 커뮤니티와 전 세계 무슬림을 지지하는 데 나의 목소리를 보태고 싶다”며 “(트럼프류의) 공격은 설령 오늘 당신을 표적으로 삼지 않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모든 사람을 해치게 된다”고 말했다. 미국 복싱계의 전설인 무함마드 알리도 이날 성명을 내고 “무슬림은 자신들의 개인적 의제를 진전시키기 위해 이슬람을 이용하는 이들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트럼프를 비난했다. 본명이 캐시어스 클레이인 알리는 이슬람으로 개종하며 이름도 바꿨다.
심지어 이슬람이라면 치를 떠는 이스라엘 정치권도 트럼프의 발언에 불쾌감을 나타났다. 이스라엘 의원 37명은 이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달 말로 예정된 트럼프와의 면담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 공화당 지지층 65% 트럼프 발언 지지
이런 안팎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발언을 지지하는 공화당 유권자들이 절반을 훨씬 넘고 있어 이번 논란이 오히려 지지층 결집 효과를 내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광고 로드중
트럼프는 자신의 발언이 오히려 지지층 결집 효과로 이어지자 “절대 경선을 그만두지 않겠다”며 완주 의사를 강하게 내비쳤다. 그는 이날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 주 스털링에 있는 자기 소유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가진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파동에 대해 전혀 위축됨이 없이 오히려 “얼마나 대단하냐”고 호기롭게 반문한 뒤 “내 인생은 늘 승리였다. 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발언의 논란에 대한 생각을 묻자 그는 “내 선거운동의 핵심은 정직(honesty)이다. ‘무슬림 입국 금지’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고 비난할 수 있지만 무슬림에 대한 감시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워싱턴 정가의 한 관계자는 “이번 파문이 오히려 ‘트럼프주의(Trumpism)’를 더 널리 알리는 효과만 낳을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