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남아공 작가 켄트리지展 2016년 3월 27일까지
윌리엄 켄트리지가 지난해 중국 여행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3채널 영상작품 ‘양판희를 위한 메모’. 1960년대 후반 중국 문화혁명 중에 상연된 공산당 선전 연극 ‘양판희’를 뼈대 삼아 프랑스 파리 코뮌 때 신문 등의 자료를 끌어들여 사회주의 유토피아의 이상과 실패를 고찰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일요일 오후 폐장 안내방송이 나오자 한 관람객이 “어, 벌써 이렇게 됐나. 다른 덴 가보지도 못했는데”라고 한탄했다. 요모조모 뜯어보다 하염없이 주저앉도록 붙드는 작품이 그득하다. 소나무가루 섞은 시멘트보드를 콘크리트 벽체처럼 세워 나눈 구획마다 영상 서너 개가 묶여 차례로 돌아간다. 인형극 프레임에 기계장치와 영상을 조합한 설치작품 ‘블랙박스’(2005년)의 구동 시간만 35분이다. 아프리카 남서부 나미비아에서 20세기 초 독일군이 저지른 토착민 대학살 이야기다. 넋 놓고 바라보다 보면 금세 폐장시간에 쫓긴다.
다른 하나는 놓친 부분이 없는지 구석구석 살피며 움직여야 한다는 거다. 몇몇 틈새에 뜻밖의 전시공간이 숨어 있다. 제2전시실 안쪽 ‘시간의 거부’(2012년) 방을 지나쳤다면 다시 관람하길 권한다. 벽을 빙 두른 30분 길이의 5채널 영상, 메가폰 머리를 단 로봇을 연상시키는 사운드장치, 기묘한 생김의 ‘숨쉬는 기계’로 구성된 영역이다. 무대 한복판에 올라 작품 일부로 스며드는 경험을 ‘편안하게’ 해볼 수 있다. 작가는 대학에서 정치학, 미술, 연극을 전공하고 한때 TV시리즈 예술감독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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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바깥세상을 스튜디오에 끌어들여 해체하고 재배열해 확장시킨다. 그 과정은 인간의 삶을 닮았다. 스튜디오는 사람의 뇌처럼 다양한 외연(外緣)을 재구성해 출력하는 공간이다. 조금은 거칠고, 혼란스럽고, 불확실한 상태가 자연스럽다. 예술과 삶의 ‘흥미로운 난센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시간의 운명을 인간이 피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공간설치작품 ‘시간의 거부’(2012년). 미술관 속에 마련된 하나의 별세계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