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수성근위축증 신형진 씨 주치의, 강성웅 강남세브란스병원 부원장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신형진 씨(오른쪽)와 강성웅 강남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강 교수의 재활치료 덕분에 인공호흡기를 떼고 일상생활이 가능해진 신 씨는 현재 연세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2011년 2월 강성웅 강남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부원장·호흡재활센터 소장)는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척수성근위축증으로 투병 중이던 신형진 씨(32)의 어머니 이원옥 씨의 글이었다. 강 교수가 신 씨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6년 2월. 당시 신 씨는 인공호흡기를 떼면 살 수 없는 비극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강 교수를 만나 끈질긴 호흡재활치료를 한 덕분에 연세대 컴퓨터과학과를 무사히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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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25일 미군 앰뷸런스 항공기가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미국에 있는 친척집을 방문했다가 급성폐렴에 걸린 신 씨가 한국으로 옮겨진 것. 신 씨는 희귀병에 걸린 상태에서도 연세대에 합격해 화제가 된 인물이었다. 강 교수는 “당시 뉴스를 보고 ‘내가 치료해야 할 환자’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권위자였다. 재활의학과에 몸담은 지 약 30년. 그는 숱하게 많은 근육 희귀병 환자들이 호흡기가 굳어져 사망에 이르는 것을 보며 미국으로 건너가 희귀 근육병 환자를 위한 호흡재활치료를 배웠다. 좀 더 빠른 시기에 호흡재활치료를 했다면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환자들이 너무 많았지만 국내에는 이를 연구하는 학자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강 교수는 신 씨 부친이 재직 중인 회사에 “언제든 내가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메모를 남겼다. 하지만 경황이 없던 신 씨의 부모는 그를 다른 병원에 입원시켰다. 1년 반 동안 병원 신세를 졌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자 신 씨의 부모는 잊고 있던 강 교수의 이름을 떠올렸다.
○ 멈춰 있던 호흡기 근육을 단련시키다
강 교수는 폐활량이 정상인의 10%도 안 되는 호흡부전 환자들을 치료한 경험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 씨를 치료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전에 입원했던 병원에서 기관을 절개해 버렸기 때문이다. 기관을 봉합해 원상복구하지 않으면 자가호흡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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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호흡재활기구를 동원해 5개월간 근육 단련에 힘썼다. 이미 퇴화된 근육 기능을 운동으로 더 좋게 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 대신 전기충격을 가하는 방식으로 멈춰 있던 호흡기 근육을 단련했다. 5개월간 이런 식으로 재활치료를 한 뒤 2006년 8월 드디어 기관 절개 부위를 봉합했다. 당시 폐활량은 정상인의 10%가 채 안 됐지만 20일간 치료 교육을 반복한 끝에 신 씨는 퇴원을 할 수 있었다.
강 교수는 “기관을 절개해 버리면 자가호흡 훈련은 포기해야 한다고 보는 의사들이 대부분”이라며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6개월에 걸친 치료 끝에 신 씨가 학교로 돌아가는 것을 보며 의사로서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학교로 돌아간 신 씨는 이후 ‘연세대 호킹’이라 불리며 학부를 마친 뒤 석·박사 과정에 진학했다.
강 교수는 “근육병 환자 대부분은 어린 시절 사망하는데, 상당수가 호흡기 근육이 굳어져 병원에만 누워 있다가 세상을 떠나는 게 매우 안타깝다”며 “조기에 호흡재활치료를 병행한다면 몸은 다소 불편하더라도 신 씨처럼 꿈을 이루고, 주어진 생애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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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척수성근위축증, 조기에 호흡기 근육 재활치료해야 ▼
척수성근위축증은 신경근육 질환의 하나로, 근력이 저하되고 비교적 빠른 시기에 사망에 이르게 하는 희귀병이다.
이 병은 발병 시기와 임상 증상에 따라 1, 2, 3형으로 구분된다. 1형은 출생 후 6개월 이내에 나타나는데 젖을 먹을 수 없어 영양 섭취가 부족해 성장 장애를 보인다. 2형은 출생 6∼18개월 사이에 증상이 나타난다. 혼자 앉지 못하고 돌이 지나도 걷지 못하는 증상을 보인다. 3형은 생후 18개월 이후에 나타나는데 혼자 걷지만 자주 넘어지고, 청소년기부터는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들어진다.
신경근육계 질환에서 호흡기계 합병증은 큰 문제가 된다. 온몸의 근육이 위축되면서 호흡기 근육 역시 약화되고, 일반인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양만 호흡하게 되기 때문이다. 장기간 심호흡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면 영구적으로 폐가 손상될 수도 있고, 혈액 내 산성도를 감소시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녀가 척수성근위축증 판정을 받았다면 일반 근육 재활치료뿐 아니라 호흡기계 근육 재활치료와 훈련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치료 시기가 늦으면 인공호흡에 의존한 채 평생을 살아야 할 수도 있지만, 조기에 훈련하면 자가호흡을 하며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