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유-무형 문화재 지정 실태 <중>유형 문화재 검증도 부실
가짜로 드러나 1996년 국보에서 지정 해제된 ‘귀함별황자총통’(왼쪽). 2012년 보물 제758-2호로 지정된 공인박물관 소장 ‘남명천화상송증도가’(오른쪽)는 장물 논란을 빚고 있다. 동아일보DB
해군 충무공해전유물발굴단은 1992년 8월 18일 경남 통영군 한산면 앞바다에서 귀함별황자총통을 인양했다고 발표했다. 불과 이틀 뒤 문화재위원회 최영희 위원과 이강칠 전문위원이 “화포 형태와 명문(銘文)으로 보아 16세기 말 제작된 진품”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어 다음 날 문화재위원회가 이를 국보로 지정하기로 의결했다. 인양된 지 불과 사흘 만에 국보 지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이다.
진실은 엉뚱한 곳에서 밝혀졌다. 해군 충무공해전유물발굴단과 유착된 수산업자 비리를 검찰이 수사하는 과정에서 당시 발굴단장인 황동환 해군 대령이 골동품상과 짜고 위조품을 미리 바다에 빠뜨린 사실이 드러났다.
2008년에는 국내 유일의 군사용 쇠북으로 인정돼 보물 제864호로 지정된 금고(金鼓)가 가짜로 판명이 났다. 쇠북에 새겨진 명문이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점이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유형문화재의 국가문화재 지정 과정에서 어처구니없는 부실 검증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의해 가짜로 판명이 난 이른바 ‘증도가자’ 검증이 대표적이다. 증도가자가 처음 공개된 2010년부터 활자와 번각본(금속활자로 찍은 책을 목판 위에 놓고 똑같이 다시 새긴 것)의 서체가 서로 다르고 출처도 불확실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충분한 검증 없이 올해 국가문화재 지정 절차에 착수한 끝에 국과수 발표 이후 전면적인 재검증에 나선 상태다.
문화재계에서는 유형문화재 검증에서 핵심 단서로 꼽히는 출처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는 관행을 가장 큰 문제점의 하나로 꼽고 있다. 3년 전 보물 제758-2호로 지정된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공인박물관 소장본)의 장물 논란이 대표적인 사례다. 고미술 수집가인 서성철 양지고미술관 관장은 “보물 제758-2호는 박모 씨가 1988년 도난을 당한 장물”이라는 취지의 민원을 올 3월 문화재청에 제기했다. 문화재청에 사진과 내용증명서까지 보냈지만 8개월이 넘도록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했다.
문화재청은 본보 취재가 시작된 직후인 이달 19일에야 직원들을 서 관장에게 보내 관련 자료를 받아갔다. 서 관장을 만난 문화재청 직원은 “박 씨가 생전에 쓴 논문에 증도가 사진을 게재한 점 등을 감안할 때 장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우리나라 문화재 제도는 출처가 불투명해도 유물 자체의 가치가 높으면 국가 문화재 지정이 가능한 구조”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가문화재 지정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단 2명의 문화재 위원 감정 의견에 따라 국보로 둔갑한 귀함별황자총통 사례에서 보듯 폐쇄적인 문화재 감정 시스템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문화재 등록예고 기간에 사진과 감정자료 등을 적극적으로 외부에 공개해 여러 전문가들이 다각적으로 검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