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다문화주의 정책, IS 파리 테러로 위기 직면 유럽 내 무슬림은 대부분 온건 이슬람 문화도 변화 위해 노력 증오는 또다른 증오를 부를 뿐… 톨레랑스는 폐기 대상 아닌 테러를 이겨낼 중요 무기다
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원래 무슬림(이슬람 신자) 이주민들에 대해 서구사회가 펼친 정책 기조는 다(多)문화주의였다. 이주민들끼리 모여 살면서 문화적 정체성을 지킬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위해 학교와 모스크를 지어주었다. 그렇지만 내심으로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공동체들이 서서히 해체되고 장기적으로 유럽사회에 동화되리라고 기대했다. 모로코나 알제리, 터키 출신 이주민들은 분명 고국에서보다 고액의 임금을 받았으며, 심지어 실직 상태라도 상당한 복지 혜택을 누렸다. 그러니 이들은 서구사회에서 행복해할 것이고, 점차 주류 문화에 통합되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단순한 계산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2세대, 3세대 무슬림들은 1세대보다도 더 현지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일종의 2등 시민으로서 ‘게토’ 내에서 차별받으며 가난하게 살고 있다. 이 지역의 실업률, 범죄율, 고등학교 중퇴 비율 등 각종 수치가 주류사회의 평균보다 훨씬 높다. 이들이 유럽사회에 심한 적대감과 증오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예컨대 미국 9·11테러 당시 많은 도시에서 무슬림 청년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환호하며 승리를 축하한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들의 태도가 다시 주류사회의 반발을 불러왔다. 비판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에게 이슬람은 서구사회가 견지하는 행복 추구의 원칙에 저해되며, 서구 근대성과 어울리지 않는 후진적인 관습들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였다. 특히 여성 할례를 비롯해서 강제 결혼, 명예살인 등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각종 폭력이 강한 비판을 불러왔다. 이제 일부 정치가들과 언론인들은 서구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무슬림들은 강제 출국시켜야 한다고 거침없이 주장한다.
갈수록 더 소외되는 유럽 내 무슬림 청년들을 이슬람국가(IS) 같은 광신적 집단이 강렬한 전투적 이슬람 교리로 유혹하여 잔혹한 테러리스트로 만들었다. 어떻게 자기 목숨까지 버려가며 싸우도록 만들 수 있을까?
누군가의 사후관(死後觀)을 지배하면 그 사람의 인격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고 한다. 영웅적으로 싸우다 순교하면 곧장 천국으로 가서 영원한 행복을 누린다는 허황된 약속이 이들을 잡아끈 것으로 보인다. 최근의 파리 테러 사건은 광신의 폭력이 얼마나 처참한 비극을 부르는지 잘 보여주었다. 기꺼이 자기 목숨을 바치려는 자는 기꺼이 남의 목숨까지 바치려 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이슬람을 적으로 돌려야 하는가?
‘기독교 대(對) 이슬람의 대결’이라는 식의 주장은 IS 같은 저급한 광신 집단의 과장되고 왜곡된 선동이다. 여기에 말려들면 공포가 공포를 낳고 증오가 다른 증오를 가져오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톨레랑스는 폐기 처분 대상이 아니라 악마적인 테러를 이기기 위한 중요한 무기다.
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