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보이지 않아/안 에르보 글, 그림/김벼리 옮김/48쪽·2만2000원/한울림어린이
색깔이란 개념은 눈이라는 기관이 기능하지 않는다면 결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상상만 할 뿐이지요. ‘바람은 보이지 않아’의 원제목은 ‘바람은 무슨 색일까?’입니다.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났던 시각장애를 가진 소년이 작가 안 에르보에게 했던 질문이라고 해요. 그 물음이 작가를 사로잡은 까닭에 탄생한 것이 이 책입니다.
소년은 바람의 색이 궁금해 길을 나섭니다. 맨 처음 만난 건 늙은 개였어요. 바람의 색깔은 들판 가득한 꽃향기로 물든 색, 빛바랜 자신의 털색이라고 늙은 개가 답해 줍니다. 꽃이 핀 들판을 달릴 때 늙어 빛바랜 털 사이로 스미는 바람의 느낌이 향기로 전해집니다. 책장을 넘기니 나무 뒤에 숨어서 듣던 늑대가 이렇게 말해 주네요. 숲 속에 깔린 젖은 흙이 품고 있는 어둠의 색이라고요.
구멍을 내거나 코팅을 더해 손끝의 촉감으로도 읽을 수가 있어요. 바람을 알게 된 소년을 뒤로하고 책장을 덮으며 가만히 눈을 감아 봅니다. 보이지 않을 때 선명해지는 감각들이 바람의 색을 알려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김혜진 어린이도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