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미라 베이라슬리의 ‘세상의 다른 쪽으로부터’
미국 외교관 출신인 저자(왼쪽)가 터키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등 신흥 7개국을 발로 뛰며 혁신기업가들을 취재한 책 ‘세상의 다른 쪽으로부터’의 표지.
미국 신문과 방송을 찬찬히 보다 보면 실리콘밸리는 ‘첨단 공업지대’라는 산업적 개념을 뛰어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영역으로 그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정치권력을 상징하는 ‘워싱턴’과 자본권력을 의미하는 ‘월가’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워싱턴 정가 출신 유력인사들과 월가 거물 금융인들이 잇따라 실리콘밸리 기업으로 영입되면서 ‘미국을 움직이는 중심축이 동부(워싱턴 뉴욕)에서 서부(실리콘밸리)로 이동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마저 나온다.
‘세상의 다른 쪽으로부터(From The Other Side of The World)’는 이런 실리콘밸리가, 그 상징 인물 중 하나인 애플 스티브 잡스 같은 혁신 기업가가 ‘미국 반대편’인 신흥 국가들에서도 태동하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의 보좌관을 지낸 외교관 출신 저자(엘미라 베이라슬리 뉴욕대 강사)가 터키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멕시코 인도 러시아 중국 등 7개국을 발로 뛰며 쓴 책이다. 이들은 미국 같은 선진국에 비하면 ‘기업(창업) 하기 좋은 나라’가 결코 아니다. 저자는 공통된 7대 장애물로 △숙련된 노동력과 경영인의 부족 △열악한 인프라 △모자란 협업 공간 △독점 △부패 △낮은 법치 수준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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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실리콘밸리가 아닌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중동 지역에 있는 개인(혁신 기업가)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고, 나아가 무한한 기회를 지닌 새로운 산업을 일으킬 수 있는 건 인터넷이 열어놓은 세계화 덕분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외교협회(CFR)와의 인터뷰에서도 “세계화는 개별 국가 정체성, 민족주의, 심지어 각 개인의 삶과 사고방식에도 이미 심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중산층 증가나 창업 열기는 세계화를 빼고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외교정책의 양성평등을 촉구하는 여성단체 ‘FPI(Foreign Policy Interrupted)’의 공동창업자이기도 한 저자는 “‘외교관 출신이 어떻게 혁신 기업에 대한 책을 쓰겠느냐’며 내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사람들(아마도 남자들)이 있었는데 그것이 집필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됐다”고 했다. 저자도 장애물을 극복하려는 혁신DNA를 지닌 셈이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