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문화재단이 발굴한 결과 성벽 흔적 대신 건물터가 나와 동쪽-북쪽의 나성과 달리 백마강이 자연해자로 기능한 듯 일각선 도성경계 강 건너 확장설도
2012년 충남 부여 능산리사지 근처에서 발굴된 동나성 성벽. 내부를 흙으로 다져 올린 뒤 그 위에 돌을 쌓았다. 백제고도문화재단 제공
문화재청과 발굴 기관인 백제고도문화재단에 따르면 올 6월 충남 부여군 구교리 구릉지대에서 벌인 서나성 추정지 시굴조사에서 성벽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 대신 이곳으로부터 서쪽 백마강 방향으로 50m가량 떨어진 곳에서 사찰 강당지로 보이는 유구(遺構·옛 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엿볼 수 있는 흔적)가 모습을 드러냈다.
심상육 백제고도문화재단 책임연구원은 “통상 사찰이 나성과 인접한 곳에 들어서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추정지에 서나성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외리사지와 왕흥사지 등을 제외하고 정림사지, 부소산 폐사지, 군수리 사지, 동남리 사지, 구아리 사지 등은 모두 나성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부여 나성 가운데 북나성과 동나성 유적은 이미 발견됐지만, 서·남 나성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일제강점기부터 구릉과 제방을 중심으로 서나성의 위치를 추정하곤 했다. 그러나 막상 땅을 파 보니 북·동 나성과는 달리 서쪽에서는 나성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학계에서는 사비도성의 서쪽을 휘돌아 나가는 백마강이 일종의 자연해자로 기능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굳이 성벽을 쌓지 않아도 물길로 외적의 즉각적인 침입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박순발 충남대 교수(고고학)는 ‘사비도성의 구조에 대하여’ 논문에서 “사비 천도 당시 최대의 가상적은 고구려였을 것이므로 도성 방비에 있어서 가장 주의를 기울인 방향은 역시 동·북방이었을 것”이라며 “반면 남쪽과 서쪽은 백마강이 자연해자와 같은 역할을 해 주고 있기 때문에 나성 건설이 시급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썼다.
나성이 학자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도읍의 경계를 명확히 보여 주기 때문이다. 예컨대 능산리 사지 옆을 남북으로 지나가는 동나성이 사비도성의 동쪽 경계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서나성이 없었다고 전제할 때 사비도성의 서쪽 경계는 어디인지가 의문으로 남는다. 이 부분에서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조금씩 엇갈린다.
△백마강 건너편에 왕흥사지와 외리사지, 대형 고분군이 조성된 점 △신라 궁궐인 월성(月城)도 외곽으로 점차 확대된 점 등을 고려할 때 사비도성도 인구가 늘면서 백마강 너머까지 도성의 경계가 확장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심 연구원은 “사비 천도 초기 백마강 언저리에 목책이 설치됐으나 강 건너로 도시가 확장되면서 목책 시설이 유명무실화되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