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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불용” 공감… 오바마, 시진핑에 지렛대 역할 당부

입력 | 2015-09-26 03:00:00

[오바마-시진핑 정상회담]




25일(현지 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 저지 방안을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의제로 논의했다. 북한이 다음 달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장거리 로켓 발사와 4차 핵실험 가능성을 내비친 상황에서 두 정상이 한목소리로 “추가 도발하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양국 정상은 전날 오후 시 주석이 워싱턴에 도착한 직후 백악관 영빈관인 블레어하우스에서 진행된 비공식 업무 만찬에서도 북한의 위협을 심도 깊게 논의했다. 이어 25일 오전 이어진 단독 및 확대 정상회담 등을 통해 “북한의 도발은 동북아 안정은 물론이고 미중 양국관계의 안정적인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공통의 인식을 확인했다.

유엔 총회에 참석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블룸버그통신과 인터뷰에서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위반하는 도발적 행동을 계속한다면 확실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단호하게 밝힌 것도 미중 정상의 이러한 공통된 인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블룸버그통신은 24일 보도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중국의 지렛대 역할을 요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해 미중 정상이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기 위해 논의할 것임을 시사했다.

실제로 미중 양국 안보 담당자들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여러 차례 공개 발언을 통해 ‘북핵 불용’이라는 한목소리를 내왔다. 수전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21일 조지워싱턴대 연설에서 “미중은 북한을 결코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은 북한에 영향을 끼치는 ‘지렛목(fulcrum of influence)’인 만큼 이번 회담은 북한이 핵 보유와 경제 발전 중 어느 한쪽을 분명히 선택하도록 하는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앞서 중국의 왕이(王毅) 외교부장도 19일 베이징(北京)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 팡페이위안(芳菲苑)에서 열린 9·19 공동성명 기념 세미나에서 “6자회담 구성원들은 모두 유엔 헌장을 준수할 책임이 있고 유엔 결의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연일 장거리 로켓 발사 가능성을 흘리고 있는 북한에 중국 측이 강력한 경고를 보낸 것으로 풀이됐다.

그렇다고 강경 일변도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미중 양국은 북한이 도발을 중단하고 진정성 있는 비핵화의 의지를 보인다면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은 열어둔 상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5일 “오바마 대통령이 시 주석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까지 두 나라가 집중했으면 하는 이슈들의 윤곽을 그렸으며 특히 북한과의 긴장 완화가 그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양국 정상은 이런 기조하에서 정상회담 직후 발표할 공동선언문의 수위와 최종 문안 등을 막판까지 신중하게 검토해 왔다. 정상들은 또 북한이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도발을 감행할 경우 현실화될 각국과 양국, 유엔 차원의 제재 방안에 대해 구체적인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중 양국의 움직임에 반발하는 북한은 자신의 장거리 로켓 발사 실험에 대해 유엔과 미국 등이 새로운 제재를 가할 경우 이를 핑계로 4차 핵실험 카드를 꺼내들 것으로 여러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북한 전문 사이트인 38노스는 미중 정상회담 하루 전인 24일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하는 새로운 위성사진을 공개했다. 이달 18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상공에서 촬영한 상업위성 사진을 판독한 결과 2009년과 2013년에 핵실험이 이뤄진 서쪽 갱도 입구에 4대의 대형 트럭이 나란히 주차된 모습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실험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지키는 경비대 검문소에 이례적으로 대형 차량이 주차하고 있는 장면이 목격되는 등 전반적으로 새로운 활동이 부쩍 늘어났다.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아 4차 핵실험 장소로 유력시돼온 남쪽 갱도의 경우 2012년 이전에 굴착된 첫 번째 터널 앞 지역이 확장됐으며 폐석 더미를 이용해 땅을 평평하게 고르는 평탄화 작업이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터널 앞에는 모래와 자갈이 깔려 있었고 주변에서는 작업 차량과 장비들이 발견됐다고 38노스는 전했다.

워싱턴의 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은 미국의 정찰위성이 자신들의 움직임을 잘 관찰할 수 있도록 날씨가 좋을 때를 골라 움직이고 있다”며 “최근 풍계리 움직임은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을 자극하기 위한 의도적인 행보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의 고도화를 막지 못한 채 원론적인 수사(修辭)적 대응에만 그치는 미중 정상회담의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핵 없는 세상’을 추구하는 미국과 북한의 생명선을 쥐고 있는 중국이 북한 비핵화의 당위성에 공감하고 대북정책을 조율하는 것 자체로도 북한에는 큰 압박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워싱턴=신석호 kyle@donga.com /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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