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
상업적으로 도움이 안 돼서인지 북쪽 지도는 몇 년에 한 번 업그레이드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지지 않은 고향인데….
위성지도에서 추석 때마다 가던 아버님 산소를 찾아봅니다. 여기 아니면 여긴데, 안타깝게도 점을 찍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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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중에 들으니 그 묘비가 뽑혀 산소 앞에 누워 있다고 합니다.
2002년에 김정일이 나무 없는 산에 묘지들만 가득한 것이 보기 싫다고 묘비를 눕히고 봉분은 20cm 이하로 깎으라고 지시했습니다. 위성으로 아버님 봉분을 찾기 어려운 것도 그 때문입니다. 봉분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랬던 김정일이 죽어서 세상에서 제일 화려하고 으리으리한 무덤에 누워 있으니 화가 납니다.
위성으로 본 고향은 늘 저를 아프게 합니다. 여전히 산은 앙상하고 들은 헐벗었습니다. 매일 지나다니던 다리는 6년 전부터 위성에서 보이지 않습니다. 다리가 없으면 마을 사람들은 강을 어떻게 건너다닐까…. 제가 고향에 돌아가면 다리만큼은 놔 주고 싶습니다. 욕심 같아선 학교도 세워 주고, 병원도 세워 주고 싶지만, 그럴 능력이 아직은 없습니다. 물론 고향사람들끼리 모으면 불가능하진 않겠죠.
그렇지만 그럴 날이 과연 올까요. 한 해 두 해 빠르게 세월이 흘러가니 점점 두려운 생각이 납니다. 남쪽에 갓 왔을 때 임진각 망배단에서 북녘 하늘을 향해 제를 올리는 실향민들을 봤습니다. 그땐 “나는 젊었으니 고향에 꼭 갈 수 있을 거야”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하나 점점 세월이 덧없이 흐르다 보니 망배단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훔치던, 지금은 살아 계신지도 모를 그분들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문득문득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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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에 살면서 내일이라도 죽게 되면 가족도 없는 제 유산은 어떻게 될까 늘 궁금했습니다. 그러니 서울에서 집 살 생각도 없고, 돈을 모아 놓을 미련도 없어집니다. 믿을 곳만 있다면 “제 재산을 처분해 나중에 고향에 제 이름을 딴 다리를 좀 놓아 달라”라고 유언장이라도 미리 써 놓고 싶습니다.
지금은 방법이 없습니다. 실향민들의 유지를 받들 재단이 없습니다. 유산을 아무 곳에나 맡길 수도 없습니다. 지금 북한에 무턱대고 돈을 보내면 대부분이 어느 부패 관료의 주머니에 들어갈 것이 뻔합니다. 유언을 확실하게 집행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때까지 수십 년 기다려 줄 수 있으면서도 마무리까지 신뢰할 수 있는 재단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일은 국가 차원에서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통일항아리가 별건가요.
이런 생각 저만 하고 있을까요. 매년 수천, 수만 명의 실향민이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납니다. 그분들 중에 저 같은 생각 가진 분이 없었을까요. 아직도 수십만 명의 실향민이 남아 있습니다. 물론 내년이라도 고향 방문 길이 열린다면 꿈만 같겠죠. 미국 교포는 30년 전부터 고향을 방문했는데 남쪽 실향민이라고 안 될 게 뭐 있습니까. 그런데 우리 정부가 북한에 제안했다는 기억조차 없습니다. 어차피 남쪽이 잘산다는 것은 이미 북한 사람들도 알고도 남았는데 운신도 어려운 실향민들이 체제에 무슨 그리 큰 위협이 되겠습니까. 김정은을 설득해 북한이 만든다는 19개 경제특구 지역에 고향을 둔 실향민부터라도 고향에 가 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게 당장 안 된다면 비록 북녘 고향에 육신은 돌아가지 못해도 이름 석 자만이라도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주영체육관이 평양에 세워졌듯이 말입니다. 어제 오늘 생각이 아닙니다. 10년 넘은 생각입니다. 더 늦기 전에 실향민들의 유지를 받들 수 있는 재단 설립을 박근혜 대통령께 정중히 요청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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