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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SNS에서는]이성혐오라는 ‘떡밥’

입력 | 2015-08-28 03:00:00


여성 혐오를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웹사이트 ‘메갈리아’의 마크. 손가락 모양은 남성의 작은 성기를 비하하는 의미로 해석된다. 웹사이트 메갈리아 캡처

‘여자들은 기본적으로 ‘잘못 태어난 남성’입니다. 뭔가 모자란 존재라는 말이죠.’

위 글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당장 저에게 항의 메일을 보내시려 마음먹은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저를 비난하지는 말아주세요. 사실 저 말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했다고 알려진 말을 조금 바꾼 거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 풀리지 않으셨다면, 제가 훌륭한 ‘떡밥(인터넷에서 누리꾼을 도발하기 위해 던지는 낚시성 소재를 뜻하는 말)’을 던진 셈이 되겠네요. 사실 ‘이성 혐오’를 조장하는 떡밥은 최근 온라인에서 가장 유행하는 것들 중 하나입니다. 누리꾼을 ‘발끈’ 하게 만들기에 이만한 소재가 없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볼까요. 지난달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베스트도전 웹툰(아마추어 웹툰 작가들이 창작 만화를 올리는 공간) 코너에 올라온 한 웹툰이 난데없이 ‘여성 비하’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웹툰 내용은 라섹 수술을 했다는, 지극히 평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글 중간에 여성 혐오 용어로 오해받을 수 있는 ‘아몰랑(아, 몰라)’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글의 전체적인 맥락은 여성 혐오 현상과 아무 관련이 없었지만, 이 웹툰 작가는 몇몇 누리꾼으로부터 ‘여성 혐오자’라는 질타를 받았습니다. 결국 해당 웹툰의 작가는 해명이 담긴 사과문을 올려야 했습니다.

비슷한 일은 많습니다. 지난주 동아일보 페이스북에는 ‘회원 이름도 직업도… 아몰랑 동호회’라는 제목의 카드 뉴스가 하나 올라왔습니다. 취미 생활을 공유하고는 싶지만 신상 노출이나 적극적인 교류는 꺼리는 무(無)교류 동호회가 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게시물에 달린 반응은 없고, 제목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내용만이 댓글로 달렸습니다.

여성 혐오 현상에 발끈한 일부 누리꾼은 더욱 강력한 떡밥을 던집니다. ‘남성 혐오’에 대한 글을 올리는 페이스북 페이지나 웹사이트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들은 각종 성범죄 기사나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 게시물을 퍼 나르면서 남성들을 비판합니다.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등에 올라온 여성 혐오 게시물을 그대로 퍼온 다음, ‘여성’을 ‘남성’으로만 바꾸는 식으로 남성 혐오 게시물을 만들기도 합니다. ‘가슴이 작은 여자는 매력이 없다’는 내용을 ‘성기가 작은 남성은 매력이 없다’라고 바꾸는 식입니다. 이른바 ‘미러링(Mirroring)’ 활동입니다.

이들 중 일부는 이런 활동을 ‘남성 혐오’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한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이성 혐오 현상을 다룬 게시물을 올렸더니 여기에는 이런 댓글이 달렸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남성 혐오 현상은 사실 ‘여혐혐’ 현상이라고 해야 옳다”고 말입니다. 발음도 어려운 이 말은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를 줄인 것이라고 합니다. 아마 일본의 사회학자인 우에노 지즈코(上野千鶴子·도쿄대 명예교수)의 책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에서 따온 표현인 것 같습니다. 즉 ‘남성 혐오’ 현상은 드러내 놓고 여성을 비하하는 일부 남성에 대한 저항과 비판의 의미이지, 맹목적으로 특정 성별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이성 혐오 현상은 과연 우리 사회의 분열을 보여주는 부정적인 현상에 불과한 걸까요? 저는 이런 현상이 오히려 양성 평등사회로 나아가는 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숨겨져 왔던 양성 평등에 대한 고민이 익명성과 참여라는 SNS의 특성과 맞물려 폭발적으로 표출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실제로 이성 혐오의 역사는 꽤 깁니다. 옥스퍼드사전 인터넷판을 보면, 여성 혐오를 뜻하는 영어 단어 미소지니(Misogyny)는 17세기 중반에, 남성 혐오를 뜻하는 미산드리(Misandry)는 19세기 후반에 각각 출현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리나라의 이성 혐오 현상이 유별난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물론 과격한 표현들, 때로는 범죄에 가까울 정도로 극단적인 글이 많아 눈살이 찌푸려지긴 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떡밥’일 뿐이죠. 그 안에 숨어 있는 우리의 욕망은 이성을 보다 잘 이해하고, 잘 어우러져 살고 싶은 욕구가 아닐까요. 누리꾼들이 극단적 주장을 잘 걸러 내고, 결국은 우리 사회의 그릇된 성 관념을 바로잡는 데 도움을 줬으면 좋겠습니다.

권기범 디지털퍼스트팀 기자 ka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