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활 논설위원
권력 입김도 안 먹힌 투자
정권이 앞장서 북한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던 시절 기업들이 권력의 대북 경제협력 요구를 거절하기란 쉽지 않았다. 주요 대기업은 정권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권력 안팎의 실세들에게 이런저런 당근을 제공했지만 투자 요구는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나마 좀 알려진 기업이 북한에 진출한 사례는 나중에 부실기업으로 전락한 박성철 회장의 신원과 장치혁 회장의 고합 정도였다.
돈을 벌 수 있으면 열사(熱沙)의 중동, 포탄이 쏟아지는 전장(戰場), 전염병이 창궐하는 밀림행도 주저하지 않던 한국 기업인들이다. 그런 그들이 지리적으로 가까운 북한 투자에 손사래를 친 것은 사막이나 전쟁터보다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정권과 손잡고 대북 경협에 무리하게 뛰어든 ‘정주영 현대’가 남북의 권력자들에게 이용만 당하다 몰락의 위기를 맞은 것도 교훈으로 작용했다.
나는 우리 기업들이 북한에 진출해 주민의 삶을 끌어올리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 고임금 압박에 시달리는 기업들이 북한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는다면 그 역시 환영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북한의 행태를 감안하면 얼마나 많은 기업이 관심을 가질지 회의적이다.
기업들은 투자처를 결정할 때 정책의 일관성, 투명성, 예측 가능성이 낮은 곳을 기피한다. 내일을 예상하기 어려운 변덕만큼 곤혹스러운 일은 없다. 계약 자유와 준수, 신의성실, 재산권 보호는 상거래의 기초적 필요조건이다. 안타깝게도 북한은 모든 조건에서 최악의 투자처다. 개성공단에서 발생한 자의적 공단 폐쇄 및 남측 직원 억류, 현대와 맺은 관광사업 독점권 계약 파기와 금강산 시설 몰수는 이런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중국과 대만의 경제교류와 비교해 경협 확대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언뜻 보면 그럴싸하다. 그러나 중국에 진출하는 대만 기업은 북한에서와 같은 위험에 직면하지 않는다. 대만의 중국 투자 여건과 비슷했다면 누가 등 떠밀지 않아도 벌써 수많은 우리 기업이 북한에 진출했을 것이다. 업무상 북한에 머무는 기업 관계자들이 유사시 북측의 볼모로 잡힐 위험성도 간과할 수 없다.
‘김정은 북한’ 하기에 달렸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