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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옥 기자의 야구&]장훈… 김경홍… 그리고 오승환

입력 | 2015-08-21 03:00:00

日프로야구 불멸의 기록들… 한국인 빼놓곤 설명이 안돼
시즌 최다 46세이브 경신 도전… 오승환의 전설도 다가온다




장훈이 타석에 들어설 때면 도쿄 진구구장 관중석은 언제나 떠들썩했다. 관중은 “조선으로 돌아가라” “마늘 냄새가 난다”며 야유를 보냈다. 상대팀 포수조차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괜찮냐”라고 물었다. 장훈은 “모두 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응원 소리 아닌가”라며 딴청을 부렸다.

일본 기자들도 늘 까칠했다. “왜 당신은 라이벌 오 사다하루(왕정치)만큼 인기가 없는지 생각해봤나”라는 식의 질문을 했다. 장훈은 “한국에 팬이 3500만 명이 있고, 일본에 있는 동포까지 합하면 족히 4000만 명은 된다. 나만큼 인기가 많은 선수가 또 있는가”라며 맞섰다.

장훈은 귀화를 거부한 재일 한국인 타자였다. 거북한 시선과 설움은 스윙에 담아 날려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야구계를 주름잡았다. 1959년 프로에 입단해 23년간 안타를 3085개나 뽑아냈다. 일본 프로야구 통산 최다 안타로 장훈 스스로도 “향후 100년간 깨지기 힘들 것”이라고 장담했던 대기록이다. 장훈은 일본 리그 유일의 ‘3000안타(3085개)-500홈런(504개)-3할 타율(0.319)’ 기록 보유자이기도 하다. 입단 동기이자 ‘홈런왕’의 대명사인 왕정치보다 먼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광까지 누렸다.

장훈에 앞서 재일교포 김경홍은 ‘천재투수’로 이름을 날렸다. 김경홍은 입단 2년째인 1951년 만 18세의 나이에 최연소 노히트노런을 기록했고, 6년 뒤인 1957년에는 퍼펙트게임을 달성했다. 20년 통산 ‘400승’이라는 대기록도 남겼다. 일본 프로야구 통산 최다승 기록으로 앞으로 깨질 확률이 희박하다. 이외에도 김경홍은 통산 탈삼진 1위(4490개), 최다 이닝 1위(5526.2이닝) 등 일본 프로야구 6개 부문에서 1위에 올라 있다. 이팔용까지 거명하면 일본 프로야구의 대기록은 ‘한국계’를 떼놓고 설명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이팔용은 1950년 일본 프로야구 사상 첫 퍼펙트게임을 달성했다. 밥 펠러라는 메이저리거가 펴낸 책을 보며 독학한 슬라이더로 마운드를 평정했다.

일제강점기 때 부산에서 태어난 이팔용은 8세 때 부모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다. 1942년 도쿄 교진군(현 요미우리)에 입단해 이듬해인 1943년 다승 1위(34승) 등 5관왕에 올랐다. 당시 기록한 한 시즌 19번의 완봉승과 0.73의 방어율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최고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는 통산 승률(0.697), 통산 방어율(1.90)에서도 1위다.

그간 우리에게 질투의 대상이었던 일본 프로야구. 그런데 대기록의 역사를 들춰보면 정작 일본인들이 우리를 질투했는지도 모른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올해. 한신 소방수 오승환이 그 계보를 잇겠다고 나섰다. 후지카와 규지(전 시카고 컵스)와 이와세 히토키(주니치)가 보유하고 있는 일본 한 시즌 최다 세이브(46세이브)를 갈아 치우겠다고 선언했다. 오승환은 19일 현재 36세이브로 구원 부문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오승환 스스로의 의지가 무척 강한 데다 남은 경기가 30여 경기인 것을 감안하면 가능성은 충분하다. 전설의 반열에 오른 선배들이 남긴 일본 프로야구 역사에 오승환이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새길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윤승옥 기자 touc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