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신흥무관학교 발자취를 따라] <下>우당-범정 손자 이종찬-장호성 현지 대담
신흥무관학교 설립지인 중국 지린 성 류허 현 싼위안푸 진 쩌우자 가에서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왼쪽)과 장호성 단국대 총장이 대담을 나누고 있다. 이들은 독립투사 후손으로서 할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이곳에 온 소회를 밝혔다. 뒤에 보이는 다구(大古) 산에 신흥무관학교 훈련장이 있었다. 류허=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이종찬 전 원장=(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쪽이 저희 할아버지 식구들이 모여 산 곳입니다. 저기 보이는 다구 산에 신흥무관학교 훈련장을 두었지요. 일본군 감시를 피하려고 마을에서 한참 들어간 외진 곳을 택한 거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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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런데 신흥무관학교 졸업생 3500명 가운데 현재 400명밖에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아직 우리가 찾아내지 못한 분들이 너무 많아요. 한반도에서 만주까지 600리 길인데 그 사이에 수많은 연락망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자료로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으니 안타깝습니다. 연락망뿐 아니라 이 외진 곳에 물자 보급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등 밝혀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이 많습니다.
▽장=동감입니다. 단국대도 독립투사가 세운 학교답게 선열들의 행적을 제대로 규명하는 데 힘을 보탤 생각입니다. 당시 독립항쟁의 거점이 만주였던 점을 감안해서 중국 동북 3성 안에 독립운동 연구센터를 두고 현지 조사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애국애족의 도량으로 군사훈련까지 실시한 곳인데도 신흥무관학교가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의 효시가 아니라는 사실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육사는 1946년 미 군정청이 설립한 ‘조선 경비 사관학교’를 효시로 삼고 있습니다. 북한도 1932년 빨치산 투쟁에서 시원을 찾기 때문에 김일성이 태어나기 전 설립된 신흥무관학교에 관심이 없습니다. 대한제국이 망한 뒤에도 의병과 독립군, 광복군으로 꾸준히 이어져 오늘날 대한민국 군대가 나온 겁니다. 비록 나라가 망했어도 군 간부를 양성한 것이지요.
▽장=일제강점기 역사를 ‘죽은 역사’로 방치하지 말고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광복 이후 조부께서 독립운동가분들을 모시고 학생들 앞에서 연회를 베풀고, 후손들에게 대학 장학금을 꾸준히 지원했다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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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임정 얘기를 들으면 남의 일 같지가 않습니다. 조부께서 중국 단둥 시내의 이륭양행 건물 안에 설치된 ‘임정 안동교통사무국’과 소통하면서 군자금을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했다고 들었습니다. 후손들의 손으로 임정 기념관을 짓는다면 의미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끝으로 최근 개봉한 영화 ‘암살’에도 등장하는 김원봉, 김무정 등 연안파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재고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중국은 궈모뤄(郭沫若)처럼 한때 국민당에 몸담은 인사들도 혁명열사로 추존해 공적을 기리고 있습니다. 항일투쟁에 대한 공적만큼은 정당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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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
―1936년 중국 상하이 출생
―1960년 육사 16기 졸업
―제11∼14대 국회의원
―1998∼1999년 초대 국가정보원장
―현재 우당장학회 이사장
◇장호성 단국대 총장
―1955년 서울 출생
―1978년 서강대 전자공학과 졸업
―1993년 미국 오리건주립대 공학박사
―1994∼2000년 한양대 교수
―2008년∼ 단국대 제15대 총장
류허=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