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훈, 초읽기서 돌 늦게 놓아 패배 曺 “바둑 이기고 승부는 져주네요”… 趙 “대선배 만나 멋있게 두려다…” 승패 떠나 복기하며 훈훈한 마무리
선비 같은 조훈현… 도인 같은 조치훈 깔끔한 선비 같은 조훈현 9단(왼쪽)과 은둔하는 도인 같은 조치훈 9단이 2003년 삼성화재배 8강전 이후 12년 만에 대결을 펼쳤다. 명불허전의 박력 있는 대결을 펼쳤으나 조치훈 9단이 초읽기에서 실수해 조훈현 9단이 시간승을 거뒀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26일 서울 성동구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한국 현대 바둑 70주년 기념행사로 성사된 ‘조훈현-조치훈 특별 대국 전설의 귀환’은 오랜만에 화제를 모은 바둑계 ‘빅 매치’였다. 두 사람이 반상 앞에 마주 앉은 것은 2003년 삼성화재배 8강전 이후 12년 만이다.
한국 현대 바둑은 고 조남철 9단이 1945년 11월 5일 한국기원의 전신인 한성기원을 세운 것을 기점으로 삼는다. 한국기원 1층 바둑TV스튜디오에서 열린 이날 대국을 보러 이벤트를 통해 뽑힌 100명의 바둑 팬과 이세돌, 김지석 9단 등 후배 프로 기사 등이 2층 공개 해설장에 몰려들었다. 공개 해설은 유창혁, 최명훈 9단이 맡았다.
하지만 ‘전투의 신’인 조훈현 9단과 ‘타개의 신’인 조치훈 9단의 대결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조치훈 9단이 마지막 초읽기에서 초를 다 부르고 나서 뒤늦게 착수하는 바람에 154수 만에 시간패를 한 것. 평소 제한시간을 일찌감치 쓰고 100수 이상을 마지막 초읽기에 몰려서 두곤 해 막판 집중력이 탁월한 조치훈 9단으로선 의외의 실수였다. 해설을 하던 유창혁 9단에 따르면 “끝날 당시 형세는 흑(조치훈)이 약간 우세하지만 승부를 점치기는 이른 상태”였다.
“상대가 바둑은 이기고 승부는 져 준 거죠.”(조훈현 9단)
“패자는 말이 없는 법입니다. 대선배를 만나 멋있게 두려다가 그만….”(조치훈 9단)
바둑이 끝난 뒤 공개 해설장으로 올라와 팬들에게 인사한 두 대국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복기를 하며 대국 소감을 밝혔다.
한일 바둑의 자존심 ① 1980년 일본 명인전에서 우승한 뒤 그해 말 금의환향한 조치훈 9단(위쪽)과 한국에서 전관왕을 달성한 조훈현 9단의 기념대국. ② 1992년 개최된 동양증권배에서 만난 조훈현 조치훈 9단(아래쪽)이 나란히 앉아 다른 대국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1980년대 말 이후 세계대회에서 조훈현 9단은 조치훈 9단에게 내리 8판을 이겼고, 2003년 마지막 대국에서는 조치훈 9단이 이겨 체면치레를 했다. 이날 승리로 조훈현 9단은 비공식 대국을 포함해 상대 전적에서 9승 5패를 기록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