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앤서니 도어 지음/최세희 옮김 /1권 324쪽, 2권 464쪽/1권 1만3500원, 2권 1만4500원·민음사 때는 제2차 세계대전… 부모 잃은 독일인 소년과 시력 잃어가는 프랑스인 소녀의 드라마틱한 전쟁서사 아름답고 차분한 문체로 이끌어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을 겪는 앞 못 보는 소녀와 고아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의 참혹한 상처와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한다. 책 표지에 쓰인 소녀와 소년의 이미지. 민음사 제공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을 겪는 앞 못 보는 소녀와 고아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의 참혹한 상처와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한다. 책 표지에 쓰인 소녀와 소년의 이미지. 민음사 제공
여기 부모를 잃은 소년과 시력을 잃어가는 소녀가 있다. 소년은 독일인, 소녀는 프랑스인, 때는 제2차 세계대전이다. 그러잖아도 죽음의 위협과 늘 동거해야 하는 전쟁의 시간에, 소년과 소녀는 결말이 새드엔딩이라도 이상할 것 없는 처지다. 두 아이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따라가다 보면 이들의 운명이 비극적이리라는 예감은 더욱 짙어진다.
소설은 두 아이의 이야기가 교차해 전개된다. 선천성 백내장으로 앞을 못 보게 된 소녀 마리로르는 파리의 박물관에서 일하던 아버지를 따라 할아버지와 삼촌이 살고 있는 해안도시 생말로로 피신한다. 아버지는 박물관 관장이 맡긴 133캐럿짜리 블루 다이아몬드 ‘불꽃의 바다’를 갖고 있는데, 이 보석은 나치가 집요하게 찾는 물건이기도 하다.
광고 로드중
‘마리로르는… 손가락으로 나무껍질을 만진다. 오랜 친구. 아버지의 두 손이 그녀를 번쩍 들어올린다. 아버지는 순수한, 다른 사람도 웃게 만드는, 그녀가 평생토록 기억하려고 애쓰게 될 그런 웃음을 터뜨린다.’
소년과 소녀가 일찌감치 서로를 알고 교감을 나누게 되리라는 일반적인 기대를 작가는 비켜간다. 두 아이가 직접 만나는 것은 2권의 거의 끝부분에 이르러서다. 소녀는 라디오를 통해 ‘해저 2만 리’를 읽으면서 도와달라는 메시지를 중간 중간 비밀스럽게 넣고, 소년은 이 라디오 주파수를 우연히 발견해 듣고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나선다. 작가는 두 아이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전쟁을 견뎌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글을 따라가는 독자 역시 조심스럽게 감정을 누르면서 읽어가게 된다.
이 소설은 전쟁의 상처에 관한 이야기이자 가치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린아이들이 맞서는 전쟁은 어른이 겪는 것보다도 참혹하거니와 ‘눈’과 ‘부모’라는 보호막을 잃은 아이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다. 작가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무엇이 소중한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던진다. 나치가 그토록 찾던 블루 다이아몬드가 두 아이의 손에 쥐여진다. 아이들이 보석보다 소중한 것을 깨닫는 마지막 부분은 제목의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이 무언지 가늠이 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드라마틱한 전쟁 서사와 아름답고 차분한 문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한 두 요소가 어우러져 독자들을 이끌어가는 매력도 크다. 올해 퓰리처상 수상작.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