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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식 기자의 뫔길]“응답하라 1994” 수그러들지 않는 ‘의현 복권’ 논란

입력 | 2015-07-10 03:00:00


1994년 당시 의현 총무원장이 물러난 뒤 조계종 총무원 청사에서 열린 개혁회의 현판식. 동아일보DB

2013년 ‘응답하라 1994’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방영됐습니다. 이 드라마는 당시 유행했던 음악과 감성을 담아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1994년은 대한불교조계종에도 특별한 해입니다. 당시 의현 총무원장의 3선 시도를 둘러싼 갈등 끝에 폭력 사태가 벌어지고 반대하는 대규모 승려대회도 열렸습니다. 스님은 물론이고 승가대학원에 재학 중인 학인(學人)과 대학생 불자들이 들불처럼 일어섰습니다. 결국 의현 총무원장은 4월 13일 사퇴하고, 이틀 뒤 종단 개혁을 위한 개혁회의가 출범합니다.

조계종 사람들은 1994년 불교민주화 과정을 우리 사회 민주화의 분수령이 된 1987년 6월 민주항쟁에 곧잘 비유합니다. 조계종이라는 공식 명칭 대신에 ‘개혁종단’이라는 말을 쓰고, 종단사를 언급할 때 종단 개혁 전과 후로 나누기도 합니다. 개혁에 참여했던 스님과 대학생 불자들에게 1994년 종단 개혁은 자랑스러운 역사이자 자존심입니다. 이른바 종권(宗權)은 물론이고 금권, 정치권 후원까지 받은 거대한 벽을 무너뜨렸으니까요.

그런데 지난달 의현 전 원장에 대한 징계 수위를 21년 만에 멸빈에서 공권 정지 3년으로 낮춘 재심호계원 판결이 큰 파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8일 종단에서 근무하는 재가불자로 구성된 종무원조합은 이 판결에 대해 “1994년 종단 개혁 당시의 개혁정신을 고려하지 못한 결정”이라며 “종헌(宗憲)·종법과 종도들의 공의에 따라 공명정대하게 처리해 달라”고 종단에 요청했습니다. 평소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는 종무원 분위기를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입니다.

1994년 개혁 주체들이 기득권 세력이 되면서 20여 년 전 개혁정신이 퇴색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과거의 늪에 빠져 있던 조계종을 시대와 함께 걷는 종단으로 만들었다” “오늘의 조계종을 만든 개혁”이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9일 백양사 인근에서는 종단 개혁을 주도한 세력의 하나인 실천불교전국승가회(실승) 회원들이 갑론을박을 벌였습니다. 호계원 판결을 성토하는 분위기 속에 백양사 방장이자 실승 고문인 지선 스님은 “절집에 목 베는 공사(公事·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논의)는 없다. (본인이) 참회하면 대중의 뜻을 물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승려대회 개최와 관련해서는 “실승은 정치단체가 아닌 수행단체다. 자비로 저항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복권을 추진한 쪽에선 의현 전 원장의 참회가 있었고 고령이라는 점, 그리고 1994년 징계 당시 있었던 절차상의 문제 등을 고려한 판결이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종단의 바닥 정서는 이번 판결을 개혁정신의 훼손, 과거로의 후퇴로 여기고 있습니다.

조계종 대다수 구성원의 목소리는 분명합니다. 의현 전 원장의 복권 문제는 찬반을 떠나 종헌 개정 차원에서 제대로 다뤄져야 할 사안이라는 겁니다. 1994년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명백한 메시지가 필요합니다. 아니, 지금은 빛이 바랜 그 개혁정신을 제대로 실천하겠다는 응답이 필요합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