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름 깊어가는 한국경제]정치가 망친 그리스 경제의 교훈 유로존의 축복, 포퓰리즘에 무너져… 고비용구조 손질만이 경제 살릴 길
세계 경제를 혼돈 속으로 빠뜨린 그리스 경제의 문제는 단일 통화인 유로화의 태생적 한계와 무리한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정책의 부작용이 겹쳐 발생했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역대 정권들이 노동생산성이나 산업경쟁력 강화를 통해 경제의 내실을 다지기보다 재정을 풀어 복지 수요를 충당하는 데 급급하다 보니 경제의 기초가 망가진 것이다. 그리스의 사례는 가파른 엔화 약세와 미진한 경제 구조개혁 등으로 안팎의 악재에 직면한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 “한국도 구조개혁 실패하면 그리스 꼴”
경제력이 다른 나라들을 하나의 통화로 묶은 유로존 체제는 1999년 처음 출범했을 때만 해도 꽤 성공적인 실험인 듯했다. 회원국들이 강한 유로화를 무기로 저금리의 해외 투자자금을 대거 유치하면서 가입 직후 경제성장률이 크게 올라가고 집값 등 자산가격도 뛰기 시작했다. 그리스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결과로 1980년대 초만 해도 30%가 채 안되던 그리스의 국가부채 비율(국내총생산 대비)은 지난해에 177%까지 불어났다. 김위대 국제금융센터 유럽팀장은 “유로존에 편입된 그리스는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쓸 수 없어서 수출 감소 등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며 “정치권이 계속 선심성 복지정책을 펴고, 국민들의 고통 분담 의지가 약했던 점도 이번 위기를 키웠다”고 말했다.
그리스의 위기는 경제 구조개혁 과제에 직면한 한국에 의미하는 바가 크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공무원연금의 경우 낸 돈 대비 받는 돈을 뜻하는 수익비(比)가 한국과 그리스는 별 차이가 없다”며 “이런 경제의 고비용 구조가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우리도 그리스처럼 재정위기가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 해외 석학들의 해법 제각각
해외 석학들이 이번 사태를 풀기 위한 해법으로 제시하는 방안은 다소 엇갈린다. 그리스 자체의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지금까지 유로존 체제를 이끌어온 독일, 프랑스 등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강하다. 미국에 맞서 유럽의 힘을 키우겠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문제 국가’들의 가입을 묵인해 놓고 이제 와서 고강도의 긴축을 요구하며 그리스를 몰아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채권단이 그리스 정부에 가혹한 재정적자 비율을 요구하면서 그리스의 경제 상황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려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재동 jarrett@donga.com·이유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