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째 개인전 여는 봉은사 주지 원학 스님
표구가 끝나기 전 자신의 작품 앞에 선 원학 스님. 그는 “호랑이가 도심으로 나오면 구경거리가 되지만 산을 지키면 으뜸이 된다”며 “‘가야산 호랑이’로 살며 수행자의 삶을 지킨 성철 스님의 가르침을 되새기고 있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2일 서울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 만난 봉은사 주지 원학 스님(62)의 말이다. 스님은 17∼23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9길 아라아트센터에서 7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16세 때인 1965년 도성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그는 남다른 행보를 걸어왔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부장과 종단의 국회 격인 중앙종회 의원, 10·27법난피해자명예회복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2008년에는 정부의 종교 편향을 비판하는 범불교도대회를 주도했다. 그는 종단의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이른바 ‘사판(事判)’의 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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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는 산수화와 사군자에 포도와 연꽃, 소나무 등을 보탠 10군자, 금강경 등을 옮긴 작품 등 70여 점이 출품됐다.
40년 이상 공들여 온 서화는 스님에게 수행의 또 다른 이름으로 존재해 왔다. 사실적인 북종화와 달리 남종화는 자신의 직관을 담아내는 사의(寫意)적 표현이 핵심이다. “남종화는 육조 혜능 스님으로 대표되는 남종선(南宗禪)과 맥이 이어집니다. 처음부터 100계단을 차례로 밟는 게 아니라 일념 공부를 통해 단박에 그 계단들을 뛰어넘는 경지로 가는 것이죠. 선비정신과 깨달음을 기초로 한 직관적 작업이 남종화의 정수죠.”
원학 스님이 스스로 정한 자호(自號)는 삼이당(三耳堂)이다. “출가자 본분은 부처님 은혜를 갚는 머슴 역할 아니겠습니까. 머슴이 일 잘하려면 두 귀가 잘 열려 있어야 하고, 여기에 마음속 귀까지 열려 있어야 한다는 의미죠.”
2013년 봉은사 주지로 취임한 원학 스님은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도심 사찰의 문화콘텐츠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봉은사는 최근 사찰음식과 다도, 휴식이 가능한 전통문화체험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개별 사찰로는 최초의 국악관현악단이 창설됐고, 7일에는 조계종 불교음악원도 개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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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