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세계를 주름잡던 일본 가전기업들의 성적이 최근 모두 부진하다. 글로벌시장에서 삼성과 LG에 번번이 밀린다. 일본을 대표하던 가전기업 파나소닉(옛 마쓰시타전기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파나소닉의 부진을 파헤친 책들이 여럿 나왔다. 주로 경영전략 측면의 잘못을 지적했다. 하지만 최근 ‘인사(人事)’에서 문제점을 찾은 책이 일본에서 출판돼 주목을 끌고 있다. 제목은 ‘파나소닉 인사 항쟁사’.
저자인 이와세 다쓰야(岩瀨達哉·60) 씨는 저널리스트다. 특히 연금문제를 집중적으로 취재해 대위기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이름을 떨쳤다. 이번 책은 파나소닉의 옛 임원들을 만나 언론에 알려지지 않았던 무대 뒤 이야기를 취재했다. ‘인사에서 중요한 것은 약점을 최소한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강점을 최대한으로 발휘시키는 것이다.’ 이와세 씨는 오스트리아 출신 경영사상가 피터 드러커가 남긴 격언으로 책을 시작한다. 실천하기 쉬워 보이는 격언이지만 기업들은 잘 지키지 못한단다. 오랜 세월 세계 가전업계를 주름잡았던 파나소닉이 경영부진에 빠지게 된 것도 드러커의 격언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위기에 강했다. “바람이 강하게 불 때야말로 연을 날리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며 불황 때 더 적극적인 사고방식으로 회사를 키웠다. 그는 장녀의 사위인 마쓰시타 마사하루(松下政治)를 2대 사장으로 앉혔다. 그리고 19년 동안 회장과 사장으로 지내면서 기업을 키웠다.
하지만 이와세 씨는 책에서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비밀 하나를 누설한다. 창업주가 3대째 사장인 야마시타 도시히코(山下俊彦) 씨에게 ‘마사하루를 경영에서 손떼게 하라’고 명령했다는 것이다. 3대 사장이 들어섰을 때 마사하루는 회장의 직위에 오른 상황이었다.
야마시타 사장은 경영개혁에 시동을 걸었지만 스스로의 손에 피를 묻히지는 않았다. 대신 4대째 사장인 다니이 아키오(谷井昭雄) 씨에게 악역을 넘겼다. 1989년 사장으로 올라선 다니이 씨는 개혁을 주도하면서 마사하루 회장과 대립하기 시작했다. 마사하루 회장은 “지나친 개혁으로 창업가의 정신이 사라지고 있다”고 반발했다.
두 사람의 대립은 1990년대 초 경영 주도권을 둘러싼 ‘인사항쟁’으로까지 발전했다. 그 당시는 상상도 못했지만 인사 항쟁은 끝없는 후유증을 낳았고 약 20년이 걸쳐 파나소닉의 경영 발목을 잡았다고 저자는 분석했다.
기업의 흥망성쇠를 인사 요인 하나로 풀어내기는 무척 어렵다. 그러나 이면을 파헤치는 기자적 기질과 열정이 이 책을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아사히신문은 “숨겨진 진실을 찾는 집념이 돋보이는 역작”이라고 평가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