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 의사·기자의 따뜻한 의료기기 이야기]
육아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나 여성들의 커리어 문제 등 현실적인 이유가 있지요. 실제로 통계청에서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결혼생활 2년 이내에 첫아이를 출산하는 비율은 감소하는 반면, 2, 3년 뒤 첫아이를 출산하는 비율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적절한 장기 피임법을 숙지해 두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일반적으로 피임을 위해서는 매일 정해진 시각에 복용해야 하는 경구피임약이나 상시 준비가 필요한 콘돔을 주로 이용합니다. 의외로 장기간 피임이 가능한 의료기기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자궁 내 피임 장치가 갈수록 똑똑해지고 있다. 저용량 호르몬이 방출되는 자궁내 피임장치인 미레나(위)와 호르몬 함량도 낮고 크기가 더욱 작아진 제이디스(아래). 동아일보DB
1968년 등장한 구리루프라는 의료기기는 T자 모양의 루프에 구리가 감긴 자궁 내 삽입 기구입니다. 기존 루프에 비해 크기도 작아졌는데요. 구리루프는 자궁 내막에 무균성 염증 반응을 일으켜 수정란이 착상되는 것을 방해하거나 정자에 독성이 있는 구리가 정자를 죽임으로써 피임 효과를 일으킵니다.
보통 한 명 이상 자녀를 출산하고 가족계획이 끝난 여성들이 주로 사용해왔지요. 구리루프는 한 번 시술로 장기간의 피임이 가능하다는 편리함이 있으나, 생리 양이 늘어나거나 생리 기간이 길어질 수 있는 단점이 있습니다.
구리루프의 단점을 보완하며 등장한 것이 바로 1990년대 초 핀란드에서 처음 승인됐고 우리나라에는 1999년에 처음 도입된 미레나입니다. 먹는 피임약과 루프의 장점만을 결합한 자궁 내 시스템(IUS·Intrauterine System)으로 소량의 레보노르게스트렐(프로게스테론)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자궁 내 시스템은 호르몬이 국소적으로 방출되므로 의료기기에서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됐습니다. 자궁 내 시스템은 구리루프와 달리 레보노르게스트렐이 매일 소량 방출되어 자궁내막을 얇게 하므로 착상을 막고, 정자 이동과 기능을 억제합니다.
이들 자궁 내 시스템은 최대 3년까지 높은 피임 효과가 지속되어 결혼 후 첫아이 출산 시기를 늦게 계획하고 있는 여성들이나 2, 3년의 터울 조절을 원하는 경우에도 고려해볼 만한 방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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