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임금피크제 3개월앞]
정부가 316개 모든 공공기관에 올해 8월까지 임금피크제 관련 노사 협의를 마치라고 권고함에 따라 공기업들의 ‘눈치 보기’ 게임이 시작됐다. 현행 제도가 겉도는 상황에서 임금피크제를 확대하고 동시에 신규 채용까지 늘리라는 요구를 받다 보니 ‘다른 공기업이 어떻게 하는지 보고 난 뒤 결정하겠다’며 몸을 사리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공공기관들이 선도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야 관련 제도가 민간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 보고 있지만 시나리오대로 될지 의문이다.
○ 겉도는 임금피크제… 몸 사리는 공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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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공공기관들이 가장 난감해하는 부분은 임금피크제 대상자들에게 부여할 보직과 업무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상당수 임금피크제 대상자들은 보고서 정리 등 후선 업무를 맡는다. 한 공기업 직원은 “명예퇴직, 희망퇴직으로 받는 위로금이나 임금피크제로 늘어나는 근무 기간에 받는 임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며 “임금이 깎이고 잉여인력 취급을 받으면서까지 다니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말했다.
한국도로공사는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에게 고속도로요금소 등 외주업체 영업소의 운영권을 주는 대신 본사 업무에서 배제해 왔다. 하지만 국회 등의 지적으로 올해부터는 외주 운영권을 주는 것도 중단됐다. 도공 관계자는 “사실상 퇴직을 유도하기 위해 임금피크제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 수 기준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전에서 임금피크제에 들어간 직원은 보직에서 물러나 ‘관리역’이란 직책으로 고객민원 상담 등을 맡는다. 현재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근로자는 350명가량으로 다른 공기업보다 많다. 한전 측은 “당사자들의 만족도가 높아서”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깎이는 급여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비간부직 기준으로 한전에서 임금피크제를 선택하면 정년이 2년 느는 대신 58세부터 임금이 ‘90%-70%-65%’로 낮아진다. 임금피크 기간 연평균 임금이 피크 시기 대비 75% 수준이다. 반면 광물공사는 56세를 정점으로 임금이 ‘70%-60%-50%-50%’로 깎여 임금피크 기간 연평균 급여가 피크 대비 57.5%에 그친다. 58세에 퇴직하는 것과 임금 차가 미미해 임금피크제를 선택할 유인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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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밀한 설계로 임금피크제 선택 유인 높여야”
임금피크제는 당초 베이비부머(1958∼1963년생)의 은퇴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최근 ‘청년고용 활성화’라는 목표가 추가됐다. 장기근속자들이 양보한 임금을 청년고용 재원에 쓰자는 발상이다. 그 취지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현행 제도하에서는 공공기관 내의 ‘시범 시행’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실제로 최근 10여 년간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관 중 청년고용이 늘어난 곳은 찾기 힘들다. 신용보증기금의 경우 2003년 임금피크제 채택 이후 신규 채용 인원이 매년 10여 명씩 줄었고 2006, 2009년에는 한 명도 뽑지 못했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공기업 정원을 직접 통제하기 때문에 임금피크제로 정년이 연장되면 해당 인원만큼 신규 인력을 뽑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임금피크제 권고안에 청년고용 가이드라인을 담았다. 정년연장으로 퇴직자가 100명 줄면, 100명을 신규 채용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지침은 자칫 청·장년층 갈등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정원이 증가해도 총인건비는 늘리지 말라는 게 정부 지침이다 보니 결국 누군가의 임금을 깎아야 한다. 정부는 장년층의 희생과 청년고용 확대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내년부터 60세 정년연장이 법제화된 상황에서 노사 간 타협을 이끌어내긴 쉽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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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january@donga.com·조은아 / 세종=손영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