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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맞으며/김주헌]베트남의 오토바이 멘털

입력 | 2015-05-14 03:00:00


김주헌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 프로그램 매니저

베트남 하노이의 날씨는 변덕스럽다. 봄, 겨울에는 바람이 심하고 춥기까지 하다. 1년 내내 햇살이 가득할 것이라는 환상을 쉽게 날려버린다. 여름에는 습도가 90%에 육박한다. 더 큰 문제는 대기오염이다. 미국 예일대의 환경평가지수 2014년분을 보면 베트남은 대기오염 부문에서 178개국 중 10위였다. 주요 원인으로 거론되는 것이 오토바이다.

이 문제를 과학이나 경제학적으로 접근하면 꽤나 심각한 이야기가 된다. 오토바이는 매연, 즉 온실가스를 유발하니 결국 기후 변화의 주범일 수 있다는 얘기까지 확장된다. 문화적 시각에서는 좀 다르다. 출퇴근 시간 거리에 가득한 오토바이 행렬, 회사 앞에 일렬종대로 주차된 수백 대의 오토바이를 직접 보지 않고는 그 장관을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 1초도 숨쉴 틈을 주지 않는 경적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남편은 부인을 뒤에, 둘 사이에 세 살 아기를 태우고 달린다. 각선미를 뽐내는 치마를 입은 여성은 한 손으로는 스마트폰을 잡고 옆에서 달리는 친구와 대화한다. 대학생들은 다양한 색깔과 디자인의 헬멧으로 개성을 드러낸다. 베트남에서 오토바이는 일종의 문화적 수준으로 격상돼 있다. ‘쌔옴’이라는 미터기를 단 오토바이 택시도 있고 ‘우버’ 역시 베트남에서는 오토바이 라인업을 갖췄다. 물론 그늘도 짙다. 베트남 교통부에 따르면 월 1000명 이상이 교통사고로 숨지고 그 대부분이 오토바이 운전자들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근대 역사, 5∼7%의 성장률, 근면성과 기업가 정신. 사실 베트남 사람들은 전후 공여국들의 원조와 다양한 기업의 투자를 능수능란하게 끌어낸 베테랑들이다. 무엇보다 전쟁을 벌였던 미국, 파병을 했던 한국과 긴밀한 파트너가 되는 과정에서 그들은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 무슨 상처를 감내했을까. 그들의 성장을 엿보며 ‘오토바이 멘털’을 느낀다. 빈 공간을 끊임없이 파고드는 민첩성, 교통량이 많아져 속도를 줄일지언정 지속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지구력, 방향 전환이 능수능란한 유연성, 그리고 위험을 무릅쓰는 결단력 등의 묘한 섞임일 것이다.

‘제도화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예측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스위스 시절 지역신문 1면에서 ‘베른 역에 기차가 도착 시간보다 2, 3분씩이나 늦었다’는 헤드라인을 본 적이 있다. 고도로 제도화된 사회에서는 기차가 몇 분 늦는 것이 화제가 된다. 물론 예측 가능한 사회가 안정적이고 편하다. 그러나 거기에서는 펄떡이는, 날것의 매력은 찾기가 어렵다. 마치 오토바이가 곡예를 하듯 위험을 감수하는 일들은 일어나기 어렵다.

오늘도 많은 이들이 하노이로 모여든다. 그곳에 기업가 정신이 있고 새로운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사에 유례없이 50년 만에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탈바꿈한 한국은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점점 더 세밀하게 제도화돼 가는 사회에서,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가 정신이 널리 퍼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주헌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 프로그램 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