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
통장에 붙은 ‘대포’의 정체는 무엇일까. 여러 설이 있지만 허풍이나 거짓말, 또는 그것을 잘하는 사람을 빗대어 이르는 ‘대포(大砲)’에서 유래됐다는 게 통설이다. 대포 하면 무기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지만 일상생활에서는 ‘허풍’ ‘거짓말’로도 많이 쓰인다. 그래서 우리 사전은 ‘대포를 놓다’를 관용구로 인정하고 있다. 언중도 허풍쟁이나 거짓말쟁이를 ‘대포쟁이’라고 부른다. 북한에서는 ‘꽝포쟁이’라고 한다.
다른 설도 있다. 막무가내, 무모라는 뜻의 일본말 ‘무데뽀(無鐵砲)’에서 왔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한자 ‘포(砲)’가 같고 ‘데뽀’와 ‘대포’의 발음이 비슷해서 그런 것 같다.
부정적 이미지가 강해선지 대포는 파생어가 거의 없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대포차, 대포폰이 입말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대포차는 이미 상당한 세력을 얻어 표제어로도 올라 있다. 훈민정음국어사전이 ‘자동차 등록 원부상의 소유자와 실제 소유자가 다른 불법 차량’을 가리키는 속어로 인정한 것이다. 가족 간의 정이 사라지면서 ‘무늬만 가족’인 경우도 많다. 이러다간 ‘대포가족’이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대포통장과 뗄 수 없는 보이스피싱의 순화어를 아시는지. 국립국어원은 2013년 3월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에서 보이스피싱을 ‘사기전화’로 쓰기로 했다. 사기전화, 뜻은 명확하긴 한데 보이스피싱을 대체할 입말로 자리 잡을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대포’라는 낱말의 함의가 허풍과 거짓말이라면 요즘 국회와 국회의원에게 꼭 들어맞는다. 지키지도 못할 공약을 남발하고, 공무원연금 개혁을 한다면서 겉과 속이 다른 합의안을 내놓고 있으니 말이다. ‘대포국회’ ‘대포의원’은 사절이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