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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엔 재정 환율은 이날 오후 한때 902.47원까지 하락(원화가치는 상승)했다가 903원 안팎에서 움직였다. 원-엔 환율은 원화와 엔화가 시장에서 직접 거래되지 않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 및 엔-달러 환율을 통해 간접적으로 계산한다. 전문가들은 지난 일주일 간 14원 가량 급락한 원-엔 환율이 조만간 800원대에 진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원-엔 환율의 하락은 외국인 자금이 한국에 유입되며 원화가 강세를 보이는 데 반해, 엔화는 일본 통화완화책의 영향으로 약세 국면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미국의 금리인상이 당초 예상보다 늦춰지면서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엔화 대비 원화 강세는 국내 수출기업들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원-엔 환율이 올해 연평균 900원으로 떨어지면 기업들의 총 수출이 작년보다 8.8%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수출입은행의 최근 설문에서 453개 수출기업의 손익분기점 원-엔 환율은 평균 972.2원으로 조사됐다. 산업별로는 일본과 수출 경합도가 높은 기계류와 석유화학, 선박 등을 비롯해 대(對) 일본 수출 비중이 많은 문화콘텐츠 업종의 타격이 클 것으로 전망됐다.
금융시장을 둘러싼 국제 정치 환경도 한국에 호의적이지 않다. 엔저를 극복하려면 원-달러 환율 상승을 통해 원화 약세를 유도해야 하지만 미국이 이를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다. 최근 미 재무부는 환율보고서를 통해 한국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게다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도움이 절실한 미국은 아베노믹스는 묵인하면서 엔화약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이러다가는 ‘환율 하락-경상수지 악화-자본유출’의 ‘위기 사이클’이 현실화될 수 있다”며 “원-엔 환율 900원은 한국경제에 대한 경고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일단 환율 쏠림현상을 막기 위한 미세조정에 주력하면서 추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일본 통화정책과 그리스 문제 등 국제금융시장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