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을 부른다는 빨간 바지가 이번에는 기적을 일으켰다. 김세영(22·미래에셋)은 공동 선두였던 18번 홀(파4)에서 거센 뒷바람에 티샷을 해저드에 빠뜨려 1벌타를 받은 뒤 세 번째 샷을 그린 앞 프린지에 떨어뜨렸다. 반면 같은 조로 동타였던 박인비(27·KB금융그룹)는 ‘OK 거리’의 파 퍼트를 남겼다. 패색이 짙었지만 김세영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떤 경우에라도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철학을 지닌 김세영은 5m 거리에서 칩인 파를 잡았다. 승부를 연장전으로 몰고 간 그는 18번 홀에서 아이언 티샷 후 142야드를 남기고 8번 아이언으로 두 번째 샷을 했다. 두 차례 지면을 튀긴 공은 깃대를 맞고 그대로 컵 안으로 사라졌다. 갤러리의 환호를 통해 뒤늦게 이글 사실을 확인한 김세영은 그린에 오르기도 전에 박인비의 축하를 받는 보기 드문 장면을 연출했다.
19일 미국 하와이 주 오아후의 코올리나GC(파72)에서 열린 롯데챔피언십. 김세영은 1타를 잃어 최종 합계 11언더파 277타를 기록한 뒤 연장전 끝에 승리했다. 이로써 그는 올 시즌 미국LPGA투어에서 가장 먼저 2승째를 거두며 상금 랭킹 선두(69만9735 달러)에 나섰다. 올해의 선수상 포인트 부문에서도 1위. 시상식에서 서울 송파구에 건설 중인 123층 높이의 제2의 롯데월드를 본 딴 트로피를 받은 김세영의 기세가 신인왕 뿐 아니라 투어 전체를 평정할 듯 높기만 하다.
●진화하는 태권 소녀.
●무늬만 미국투어
이날 우연히 TV중계를 지켜본 국내 시청자라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대회로 착각할 만 했다. 국내 기업이 타이틀 스폰서인 데다 선두권이 온통 한국 선수로만 채워졌기 때문. 미국LPGA투어 관계자는 “마지막 날 한국 선수만으로 챔피언조 3명이 이뤄진 것은 처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올 시즌 한국(계) 선수는 시즌 9개 대회에서 7승을 합작하는 초강세를 유지했다. 2012년 ANA인스퍼레이션에서 30cm 퍼팅 실패로 우승을 날린 뒤 오랜 슬럼프에 빠졌던 김인경(한화)은 3위로 마치며 재기 가능성을 보였다. 김효주(롯데)와 최운정(볼빅)은 공동 4위에 올랐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