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이 미국처럼 전임 정권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평가를 역사에 맡겼다면 과연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점입가경으로 전개되고 있는 ‘성완종 게이트’를 한발 떨어진 미국 워싱턴에서 지켜보는 기자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현 정권이 이전 정권의 역사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이전 정권도 현 정권에 대놓고 부담을 주는 우리의 후진적 전·현직 정권 문화 말이다. 이번 논란도 박근혜 정권이 이명박 정권이 ‘치적’으로 내세우는 자원개발 관련 의혹을 파헤치던 중 성완종 전 회장의 경남기업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제 발등 찍기’와 아노미 수준의 정치적 폭풍을 불러온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불법 정치자금 문제는 경위를 막론하고 언제라도 불거지면 검찰이나 필요하면 특검이 수사해 이를 명백히 밝히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이전 정권 손보기 과정에서 전혀 예상치않은 부산물로 터져 나오고, 결국 국정이 올스톱 돼 주요 이슈가 발붙일 틈이 없는 ‘블랙홀’이 되는 상황은 생산적이고 체계적인 정치 선진화 논의와는 다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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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정치적 행보는 거꾸로 자신에게 ‘정치적 공간’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당초 계획과 달리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 시점을 추후로 연기한다고 밝혔으나 공화당에서 이를 말 바꾸기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다.
한미 간 민주주의 역사가 다른 만큼 전·현직 문화를 수평 비교하긴 어렵다. 그러나 전·현직 정권이 서로를 최소한 인정하고 ‘윈윈’한다면 그만큼 안정된 정치·사회적 환경에서 정치 개혁 등 주요 이슈를 논의하고 추진할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당장은 ‘성완종 게이트’의 엄정한 수사와 진상 규명이 최우선이겠지만, 사건이 잦아들면 우리 정치권이 이번 논란을 야기한 배경 중 하나인 전·현직 정권 문화를 한번 진지하게 들여다봤으면 한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ddr@donga.com